아시아 ASIA/인도 India

바라나시로 가는 고난의 길, 야간기차 (Varanasi, India)

빛나_Bitna 2013. 6. 28. 19:04

 

캘커타 하우라 역

 

캘커타 하우라 역. 역 안은 살림살이를 잔뜩 쌓아놓고서 자리를 지키는 사람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인도를 처음 방문했다면 이런 모습에 놀랄만도 하지만, 난 이미 중국에서 비슷한 광경을 수차례 보았던지라 '사람많은 나라는 다 똑같군.'하며 쿨하게 지나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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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나시행 기차표

 

기차가 도착했다.

 

나의 첫 인도 기차여행의 목적지는 바라나시. 신랑에게는 네 번째 바라나시? 티켓을 들고 역무원에게 물어물어 플랫폼에 도착했다. 역시 복잡할 때는 물어보는게 최고다. 작은 도시지만 인도를 여행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들리는 곳이기에 기차역에서 여행자들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요리보고 조리봐도 다 현지인들뿐이다. 인도 여행하는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간게냐!

 

인도 여행의 시작, 인도에서 기차타기 http://bitna.net/1189

 

저기 내 이름이 있네?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사이에 열차가 도착했다. 가장 눈길이 가는 것은 열차 문 옆에 붙어있는 예약자 명단. 예약자 이름을 비롯한 인적사항과 출발, 목적지가 쭈루룩 적혀있었다. 역시나 아무리 봐도 외국인은 우리뿐이다. 야간열차에서 여행하는 친구들을 만나서 여행이야기나 주고 받아야겠다는 나의 꿈이 이렇게 와르르 무너지는구나.

 

Sleeper Class 내부

 

일기나 쓰자

 

기차가 출발한다. 캘커타를 떠나 정류장에 설 때마다 사람들이 우르르 내리더니, 결국 캘커타 출발 한 시간만에 열차안은 텅텅 비어 버렸다. 우중충한 Sleeper Class 코치지만 사람이 없으니 나름 좀 살만하다. 신난 우리는 편안하게 누워 책도 보고, 일기도 쓰고, 잘 준비도 하고... 그렇게 우리의 평화가 계속될거라 생각했었다.

 

자정이 조금 지나서 기차가 한 역에 멈췄다. 밖이 좀 시끄럽다 싶었는데 엄청난 인파가 우리가 타고 있는 코치 안으로 들이닥쳤다. 서로 밀치고, 소리치고 꼬마들은 울음을 터트린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코치안에 상황파악이 되지 않은 사람 두 명이 있었으니, 바로 우리 부부였다.

 

멍하니 앉아있던 내가 정신을 차린 것은 어떤 아저씨가 짐을 바닥에 내려놓더니 떡하니 내 침대 끄트머리에 앉았을 때였다.
아, 그렇다. 이 사람들은 무임승차 혹은 입석인 사람들이다. 긴 노선을 운행하는 열차다보니 예약된 좌석에 항상 사람이 있지 않으니까 잠깐 빈 자리에 앉아보겠다는 것이다. 학창시절 도서관에서 빈자리를 찾아 메뚜기뛰던 것처럼...

 

우리의 단잠을 깨우는 것으로 모자라 내 자리까지 앉아보겠다는 심보란 말이지! 티켓을 보여주며 내 자리에서 비켜줄 것을 요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티켓을 들이대자 바로 물러섰는데, 모르는 척 버티는 사람들도 있었다. 순간 화가 난 나는 그들을 향해 비켜달라고 소리쳤다. 그러자 슬슬 자리를 피하는 사람들, 그렇게 인도 열차에서의 첫번째 밤은 요란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신문으로 시작되는 기차의 아침

 

내 마음을 달래준 사람들

 

나 나름 인기좋음?!

 

잠들 수가 없었다. 코치 안에 있는 사람들의 먹고 웃고 떠드는 소리가 밤새 계속된데다, 왠지 죄를 지은 듯 마음이 불편했기 때문에. 한명정도는 앉혀줄 수도 있잖아? 장거리를 가는 사람들인데 표를 구입하지 못한 사연이 있지 않을까? 기분따라 행동하는 것은 이제 좀 고쳐야 되잖아? 수 많은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언젠가부터 조금 일이 틀어지면 까칠해지는 내 모습에 내 스스로 놀랐다고나 할까.

 

이런저런 생각에 한참을 뒤척이다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지난 밤 전쟁을 치르던 사람들은 내렸는지 코치안은 평화로웠다. 밤에는 사람들이 옥신각신 자리싸움을 하고 있었는데, 지금은 한 가족이 나란히 앉아서 짜이를 마시며 아침을 맞이하고 있다. 어제 그 많은 사람들이 자리싸움으로 전쟁한 내 앞 자리는 이 가족이 예약한 자리였다.

쾡한 눈으로 앉아있는 외국인이 안쓰러워 보였는지, 아저씨는 기차가 멈추자 밖에서 빵과 커피를 사서 우리에게 내민다. 말은 잘 통하지 않지만 손짓발짓과 단어나열에 영어를 할 줄 아는 딸에게 전화연결까지해서 이어지는 우리의 대화. 어머니를 모시고 바라나시를 지나 저 멀리로 여행가는 중이라는데, 딸은 대학생이라 공부해야 해서 같이 가지 않는다고.

 

어제 저녁이후로 딱딱해졌던 마음이 많이 말랑말랑해졌다. 내 손을 꼭 잡으며 조심하라 하시는 할머니의 손이 너무 따뜻해서. 바라나시에 도착하자마자 우리가 잘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아저씨의 모습이 너무 든든해서. 열차 창문 너머로 손을 흔들어주는 아주머니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서.

 

바라나시역

 

릭샤를 타고

 

바라나시 중심부로 이동

 

그렇게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도착한 바라나시. 외국인용 예약센터에서 다음 도시로 갈 티켓을 구입하고 (3A로 구입했다. 전쟁을 또 치르긴 싫어서.) 말도 안되는 가격을 부르는 릭샤왈라(릭샤기사)들과의 흥정끝에 릭샤를 타고 메인가트로 이동했다.

 

좁은 길은 자전거릭샤가 최고

 

바라나시의 골목길

 

바라나시 중심부는 혼란이다. 미로같은 좁은 골목으로 되어 있는데다 수 많은 사람들의 호객행위는 외국인의 혼을 빼놓을 지경이다. 커다란 짐까지 들고 있는 우리는 그들에게 너무나도 훌륭한 먹이감이 될 수 밖에 없으니, 어디도 눈길을 주지 않고,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고 묵묵히 걸을 수 밖에 없다. 끝까지 따라붙는 삐끼를 식당으로 쓰윽 들어가는 방법으로 따돌리고, 식사를 하고나서 마음속에 점 찍어 둔 숙소로 이동했다.

9월의 바라나시

 

9월의 바라나시는 평소와는 조금 다른 모습이다. 우기가 끝난 직후라 강물이 많이 불어나고 수위도 높기 때문에. (그나마 물이 깨끗해 보이기도 한다.) 강가에 위치한 숙소라 당장이라도 밖으로 나가 강가를 구경할 수 있었지만, 우리에겐 낮잠이 먼저였다. 성지순례도 아닌데 바라나시로 오는 길은 우리에겐 만만치 않은 고난의 길이었으니까.

 

바라나시 숙소 후기 알카호텔 http://bitna.net/11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