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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ain] 성벽 위에서 히로나를 느끼다. (Girona)

빛나_Bitna 2011. 7. 7. 11:07

카테드랄을 향해 걷다.


 발길가는대로 걸어서 도착한 곳은 히로나 카테드랄. 가장 높은 건물이기도하고 몇몇 사람들의 뒤를 따르다보니 여기까지 와버렸다. 낮은 건물들 사이라서 그런지 언덕위에 우뚝솟은 카테드랄이 하늘에 닿을 것만 같다.

음악회 준비 중

카테드랄로 오르는 계단에 의자와 무대설치가 한창이다. 무슨 일인가 했더니 히로나에서 열릴 음악제를 준비하는 중이란다. 예전에 알람브라 궁전에서도 음악제를 준비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데 이 동네는 이런 행사가 꽤 자주 있는 것 같다. 하긴... 오랜 역사가 묻어나는 건물들 사이에 앉아서 듣는 어쿠스틱한 음악은 상상만해도 사람을 설레이게 만드니까. 우리도 경복궁 이런데서 음악회하면 안되나?

 

카테드랄 내부

카테드랄의 숨겨진 보물

 여행중에 카테드랄을 지겹게 보았기에 그냥 지나치려 했지만 일요일에는 무료입장이라는 말에 안으로 들어섰다. 예배도 없고 사람도 없는 어둡고 조용한 카테드랄은 왠지 좀 무섭다. 인디아나 존스라도 된 것처럼 카테드랄 구석구석을 뒤적이다 두꺼운 커텐 안에 숨겨진 그림을 하나 만났다. 10세기 보물이라고 하는데 더 자세한 설명이 없었던 것이 좀 아쉬웠다. 동양화를 연상시키는 묘한 매력이 자꾸 나의 발길을 잡았다.
 

간식으로 싸온 토스트!


카테드랄 옆에 자리를 잡고 지도를 펼쳐들었다. 살짝 입이 심심한 이 순간, 친절한 숙소 아주머니가 챙겨준 토스트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늘아래 아무렇게나 자리하고 앉아 먹는 간식이 나를 즐겁게 한다.

골목길 탐험


 본격적으로 히로나 걷기를 시작해본다. 돌로 만들어진 좁은 골목과 낮은 건물에 오래된 도시의 흔적인 남아있다. 방금 손질한 듯 다듬어지지 않았지만 지금 이대로의 느낌이 이 조용한 도시와 더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무심하게 놓여진 것 같다고 할까...?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

  
골목길을 걷다보면 자연스레 만나게 되는 성벽. 히로나 구시가지는 성벽으로 둘러쌓여있다. 중간중간에 성벽위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이 있고 성벽위에 걸을 수 있는 길이 있어서 히로나 구시가지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성벽을 오르다.

성벽위에서 만난 히로나


 끝없이 이어진 성벽위에서 카테드랄과 옛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높은 곳에서만 볼 수 있을 숲도 보이고 저 멀리 신시가지도 보인다.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을 걸을때는 보지 못했는데 위에서 내려다보니 생각보다 잘 정돈된 느낌이다. 이 도시에도 역시 시야를 가리는 건물은 찾을 수 없다.
 

성벽따라 걷기

 얼마나 걸었을까? 슬슬 힘들기 시작할 때, 뒤에서 누군가 말을 걸었다. 나처럼 홀로 성벽투어에 열심인 여행족 청년은 내게 어떻게 하면 성벽에서 내려갈 수 있냐고 묻는다. 성벽을 한바퀴 돌려고 했는데 자기 예상보다 구시가지가 넓다나 뭐라나... ㅋㅋㅋ 머리까지 빨개져서 가뿐 숨을 몰아쉬는 것이 그는 충분히 지쳐있음을 말해주었다. 지도를 펼쳐들고 이제 곧 나올 출구를 알려주었다. 어디서 그런 힘이 나왔는지 뛰어가는 듯 빠르게 걸어간다. 저러니 빨리 지치는 것을 그는 왜 모를까? 청년이 말한대로 구시가지는 생각보다 넓었고 눈앞에 펼쳐진 성벽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욕심을 버리고 나만의 속도에 맞춰 다시 걷기 시작했고 곧 아까 그 청년을 다시 만났다.

어떻게 너는 이렇게 빨리 쫓아왔니?
글쎄... 그냥 난 내 속도에 따랐을 뿐이야.

ST. Forca

박물관이었던가?

음식점이 가득.

골목을 누비는 관람차도 있다.


 성벽에서 내려와 구시가지를 걷다보니 어디선가 사람소리가 들려온다. 소리를 쫓아 들어선 길 위에는 음식점과 카페들이 몰려있다. 빛이 잘 드는 야외테이블에 앉아서 여유로운 점심과 맥주 한잔을 즐겨준다. 음식점 주인 아저씨는 몇 안되는 손님이 반가운건지 서비스 디저트를 마구 추가해 주었다. 좋다, 이 여유로운 오후..!!!

히로나 역


 성벽에 올라갔을때 먹구름이 좀 보인다 싶었는데 거짓말처럼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방금까지 눈부시게 파랗던 하늘이 한순간에 어두워졌다. 다행히 내리는 비의 양도 많지 않고, 기차역까지 가는 길도 멀지 않았다. 기차역으로 가는 길에 문득 고개를 돌렸다가 쇼윈도에 불이 켜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렇게 조용히 영업하는 가게들이 또 있을까? 아무도 살지 않는 조용한 역사 속 도시인 줄 알았는데 가만 보니 시간이 흘러가고 있다. 조용하게 자기만의 속도로...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가는 기차에 몸을 실었다. 살짝 졸다가 중간역에서 탑승하는 사람들 소리에 잠에서 깼다. 거짓말처럼 하늘이 맑아져 있다. 꿈에서 깨어난 것처럼 조용한 옛 도시 히로나를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