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의 유령. 몇 년전, 오리지날 팀의 내한소식에 예술의 전당까지 달려갔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데 내가 오리지날 공연을 찾아 영국 런던으로 오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두근두근.. 설레이는 마음때문일까, 공연장으로 가는 길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런던 피카디리 서커스의 이국적인 밤거리보다 팬텀의 거대한 포스터가 내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공연장앞에서..
공연장 앞에는 공연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으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그 틈을 비집고 기념사진도 찍고 오래된 공연장도 구경하면서 관광객놀이를 마음껏 즐겼다. 공연 시작 5분 전, 좁은 복도를 지나 자리에 앉았다. (당연히 실내는 사진촬영 불가) 내 자리는 1층 앞쪽 정가운데 비교적 좋은 좌석이었다.
한국에서야 열심히 공연장을 들락날락했지만 외국에 방문한 공연장 그리고 그 속의 사람들은 낯설고 새로운 환경이다. 공연장 정 가운데 떡하니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앞쪽에 튀어나온 발코니석과 무대 가운데 놓여진 거대한 샹들리에가 눈에 들어온다. 오페라의 유령은 역시 박스석에서 봐야 맛인데... 살짝 아쉬워하는 사이에 천천히 조명이 꺼지고 공연이 시작되었다.
맘에 드는 장면
막이 오르고 시작된 경매하는 장면에서 배우가 입을 열었을때 난 순간 멈칫했다. 그렇다. 여긴 영국이고 당연히 배우들은 영국사람이므로 강한 악센트의 영어가 줄줄줄... 게다가 여긴 예술의 전당이 아니기 때문에 한글 자막따윈 당연히 없다. 정신 똑바로 차리고 영어 듣기평가를 시작해야 하는건가...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내가 이미 오페라의 유령을 2번이나 보았다는 것과 그동안 갈고 닦은 영어 듣기만 하는 능력이 있다는 것. ㅋㅋㅋ
영어 때문에 살짝 흔들리긴 했지만 금새 공연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내가 이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가면무도회와 팬텀이 크리스틴을 데리고 자신의 지하 세계로 이동하는 장면이다. 화려한 배우들의 의상과 무대를 만날 수 있고, 무대가 짧은 시간에 다양한 모습으로 변신하는 것이 작품에 더 빠져들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그 날은 유난히 그 두 장면이 내 머릿속에 더 강하게 기억되었다. 폭이 좁은 공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용극장의 강점을 이용해 예술의 전당보다 훨씬 넓어보이는 공간을 만들어 냈기 때문이다. 팬텀의 지하세계로 이동하는 동안 들리는 테마곡 The phantom of the opera의 웅장하고 섬세한 선율이 무대와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 것은 나뿐이 아니겠지. (그런데 샹들리에는 생각보다 천천히 떨어져서 아쉬웠다는... 안전때문인가? ㅋ)
배우들도 인상적이었다. 팬텀이 생각보다 아저씨 체형이어서 좀 아쉽긴 했지만... 노래를 너무 잘해서 계속 눈길이 갔다. 라울은 전형적인 영국인 미남이라 목소리는 그냥 그렇지 않을까 했는데 생각보다 힘이 있고 감정이 풍부했다. 크리스틴과 달빛아래서 노래하는 장면은 정말 멋있엇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크리스틴. 예전에 보았던 크리스틴역의 배우들보다 훨씬 키도 작고 체구도 갸날픈 아가씨였는데 어쩜 그리 성량이 좋은지 놀라울 뿐이었다. 고전적으로 생긴 외모가 너무 눈부셔서 공연을 보고나서 남자들은 모두 크리스틴 이야기만 하더라는.... ㅋㅋㅋ
공연이 끝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박수를 보냈다. 옆에 노부부는 브라보를 외치며 나를 따라 일어섰다. 공연장 안에서 기립박수를 보내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나와 같은 외국인도 상당수 눈에 띈다. 낯선 이방인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게 만드는 최고의 공연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길, 정말 런던의 밤은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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