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망의 세계여행 출발일. 처음 티켓을 예약할때만해도 그날이 되면 설레임으로 가득찬 부푼 가슴을 안고 한국에게 쿨하게 굿바이 인사를 날려주리라 예상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게 아니었다. 다크서클이 턱까지 내려와 반수면상태로 비행기에 탑승하는, 마치 긴 여행을 다 끝나고 돌아오는 사람같은 쾡한 모습이었다. 여행만 준비해도 충분히 바쁜 시간인데, 집, 살림살이, 자동차, 국민연금, 의료보험, 각종 카드와 자동이체 등등... 처리해야 할 것은 점점 늘어만가고 그 와중에 그동안 회사다니느냐 만나지 못한 지인들을 찾아뵈려니 하루가 48시간이여도 부족하구나. 떠나기 하루 전날에 여행짐을 꾸리기 시작해으니 말 다했지, 뭐...
두근두근 드디어 출발
탑승수속을 마치고 몇몇 지인들의 전화를 받으며 게이트 앞에 서니 이제서야 정신이 난다. 우리 덕분에 새벽부터 잠을 설치셨을 양가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다. 처음 계획을 말씀드렸을때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앞으로도 우리들 걱정에 마음이 불편하실텐데 밝은 목소리로 아낌없는 격려와 응원 메세지를 보내주신다. 통화를 하고 있자니 자꾸만 가슴속에서 뭔가 울컥해서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나는, 우리는 언제쯤 부모님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까? 언제쯤 부모님이 베풀어 주시는 사랑에 보답할 수 있을까? 2012년 9월 2일, 부모님의 따뜻한 사랑에 감동하며 우리의 세계여행은 시작되었다.
여기는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우리의 첫번째 도시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한국과 다를바없는 찐득한 날씨에 도로를 가득 메운 자동차들 사이에 앞뒤로 멘 배낭이 아직은 어색한 우리가 서 있다. 그래도 나름 여행 좀 해본 여자인데 언제부터 이렇게 여행 초짜가 되어 버린건지 역시 나이탓인가? 쿠알라룸푸르는 재밌는 도시다. 빌딩도 많고 자동차도 많은 것이 서울과 비슷한 것 같은데, 오가는 사람들의 얼굴은 매우 다양하다. 원래 이 동네 사람인 말레이계열, 중국계열, 인도계열 그리고 검은 천으로 얼굴을 가린 아랍계 사람들까지 무슨 인종 박람회같다.
여기는 잘란 알로르 (Jalan Alor)
숙소 체크인을 하고 짐을 내려놓자마자 침대에 쓰러졌다. 몇 일간 부족했던 잠을 몇 시간만에 채워넣을 수는 없겠지만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본격적인 여행을 시작하기도 전에 한국으로 돌아가야 할 수도 있으니까. 달콤했던 낮잠에서 깨어나보니 주변이 벌써 어둑어둑해졌다. 저녁도 먹고 주변 탐색도 할 겸 어슬렁어슬렁 숙소밖으로 나왔다. 숙소 근처 먹자골목으로 유명한 잘란 알로르는 낮보다 밤에 더 활기차다. 우리처럼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듯 많은 가게들이 문을 열고 오가는 사람들을 유혹한다.
오늘의 에피타이져
메인요리는 왕새우로!
순조로운(?) 출발을 자축하며..!
북적이는 사람들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저녁식사를 주문했다.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인지 두꺼운 메뉴판도 그렇고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것 같은 메뉴의 구성이 상당히 중국스럽다. 왕새우요리, 볶음면 그리고 이름은 제대로 모르지만 항상 먹게되는 채소를 주문했다. 이런 상차림에 맥주가 빠질 수는 없겠지? 시원한 맥주가 온몸으로 퍼지는 것이 느껴진다. '여행준비'의 피로때문에 아직까지도 꿈에 그리던 세계여행을 시작했다는 것이 믿기지 않지만, 분명한 것은 2주간 나를 괴롭히던 '여행준비'는 이제 끝났다는 것이다. 올레~!!! 그렇게 '떠남'이라기 보다는 '탈출'에 가까웠던 세계여행의 첫 날이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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