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 ASIA/필리핀 Philippines

수화물 분실, 최악의 경유지 런던 히드로

빛나_Bitna 2015. 9. 30. 20:58


우리가 예약한 항공일정



 뒤늦은 여름 휴가를 필리핀에서 보내기로 한 (겸사겸사 한국도 들르고) 우리는 곧바로 저렴한 항공권을 찾아나섰다. 우리가 찾아낸 최저가 항공권은 런던 히드로 공항을 경유해 한국으로 가는 일정이었다. 1) 서울-세부는 한국의 저가항공편을 이용해서 저렴히 예약할 수 있고, 2) 스타얼라이언스 항공사를 주로 이용하는 우리에게 유럽에서 출발하는 아시아나를 탑승할 수 있다는 것은 꽤 매력적인 조건이었다. 고로 망설임없이 예약을 했고 이것이 바로 사건의 시작이었다. 



사건1 - 고객님 수화물을 싣지 못했습니다. 


영국항공에서 준 환승안내. 평균 소요시간이 90분이라더니... (거짓말!)


한국에서 예정된 북토크 행사 관계로 나는 남편보다 몇 일 먼저 한국으로 출발했다. 탑승 수속을 하면서 영국항공사 직원이 런던 히드로 공항 환승에 대한 몇 가지 정보를 내게 알려주었다. 그의 설명을 듣다보니 1시간 30분 밖에 안되는 환승 시간이 살짝 걱정되었는데, 그는 보통 90분이 걸린다며 별 문제 없을거라고 나를 안심시켰다.  


그.러.나. 암스테르담에서 출발하는 영국항공은 예정된 시간보다 무려 50분이나 늦게 출발을 했고, 40분 밖에 남지 않은 나는 "Help Me"를 외치며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전력질주를 해야 했다. 터미널 사이를 운행하는 버스 아저씨는 총알택시처럼 달려주었고, 환승 카운터 직원은 큰 소리로 게이트 위치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나는 간신히 서울 인천행 아시아나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그러나 탑승을 도와준 아시아나 직원의 한마디, 


죄송하지만 짐은 아직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인천 도착하시면 저희 직원이 안내해 드릴겁니다. 


그의 말처럼 내 짐은 홀로 영국 런던 공항에 발이 묶였고, 작은 가방 하나 들고 서울에 도착한 나는 칫솔부터 양말까지 하루를 버틸 생필품을 사러 백화점으로 직행해야 했다. 짐은 다음날 부모님 댁으로 배달되었다.  



사건2 - 수영복도 없이 보홀을 가라구요? 


사건1을 경험한 나는 몇 일 후 같은 일정의 항공기를 탑승하는 남편이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남편은 1) 빨리 내릴 수 있게 앞 좌석을 미리 지정하고 2) 인천행 아시아나 모바일 탑승권을 미리 받아두고 3) 심지어 런던 아시아나 창구에 전화를 해서 수화물 번호를 미리 등록시키기까지 했다. 다행히 그가 탑승한 영국항공은 정시에 출발했고, 비교적 여유롭게 인천행 아시아나에 탑승했다는 메세지를 받았다. 


짐이 안왔어! 우리 필리핀 어떻게 가지?


그.러.나. 짐은 또 오지 못했다. 정시 출발에 경유시간은 1시간 30분이었는데! 인천공항에 빈손으로 도착한 허탈한 표정의 남편. 나야 한국에 몇 일 경유하는 일정이라 큰 문제 없었지만, 지금은 우리는 세부로 떠나야 하는데 수영복 슬리퍼도 없이 가라고?! 결국 우리는 세부에서 짐을 받기로 하고, 공항 근처에 있는 대형마트에서 반바지와 티셔츠 하나를 구입한 뒤에 세부로 떠났다. 


RUSH 택을 달고 다음날 도착한 우리 짐


다음날 우리는 세부에서 짐을 받을 수 있었다. (우린 진에어 타고 왔는데, 가방'님'께서는 아시아나 타고 오셨음) 덕분에 바로 보홀로 가려던 일정을 변경해 세부공항 근처에서 원치 않는 1박을 해야 했지만 뭐 나쁘지 않았다. 우리가 세부에 도착할 때부터 무사히 짐을 받아서 돌아갈 때까지 아시아나에서 수시로 짐의 상태를 메세지로 보내주었다. 



사건3 - 또? 런던만 가면 짐이 사라진다.


수화물 문제로 정신없게 시작되었지만 휴가는 즐거웠다. 필리핀에서 원없이 스쿠버다이빙을 하고, 함께 한국에 들러 북토크 행사와 가족모임에 참석했다. 그렇게 3주가 지나고 집으로 돌아갈 시간, 출국편처럼 런던을 경유하는 일정이지만 귀국편 일정에는 큰 걱정이 없었다. 런던 히드로에서 예정된 경유 시간은 2시간이었는데, 런던행 아시아나는 일정보다 빨리 도착했고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영국 항공은 지연이 되어 실제 경유시간은 약 2시간 20분 정도였으니까.


또 안왔어? 진짜 대단하다. 


그.러.나. 짐은 또 오지 못했다. 진짜 이쯤되면 어이없어 웃음도 안나온다;;  수화물 밸트가 멈추고 그 위에 남은 짐이 하나도 없는 그 상황을 눈으로 보고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와, 이건 정말 꿈이야! 런던에서 혹시나 싶어 물어본 영국항공 직원은 2시간이면 충분하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했었는데, 그 직원 이름이라도 적어뒀었어야 했어. 


암스테르담 공항의 영국항공 사무실은 우리같은 사람들로 북적북적했다. 그렇다, 얘들은 상습범이었다! 관련 문서를 작성한 우리는 빈 손으로 집으로 돌아왔고 다음날 우리의 짐은 집으로 돌아왔다. 3번을 경유했는데 3번 다 수화물이 탑승하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다니, 이거야 말로 100% (3/3)의 확률이로구나. 항공편이 지연된 경우를 제외해도 2시간 20분 동안 짐을 못 옮기는건 좀 문제가 아닐까? 이쯤되면 런던 히드로는 경유지로의 역할은 포기한 것이 아닌가 싶다. 나의 여행인생 10여년 동안 단 한번도 경험하지 못한 사건을 이렇게 제대로 겪고나니, 다신 런던에서 환승하지 않는 걸로. 


[런던 히드로 공항에서 환승하기] 


히드로 공항 지도


- 런던 히드로에는 총 5개의 터미널로 구성되어 있다. 

- 터미널 1~3은 비교적 인접해 있으나 터미널4~5는 꽤 떨어져 있다. 터미널 사이 연결은 무료 셔틀버스가 수시로 운행한다. 

- 영국 국내선과 유럽 내 이동편은 보통 터미널 4~5에서, 유럽 밖으로 가는 국제선은 터미널 1~3을 이용하는 것이 보통이다.

-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복잡한 공항 구조와 보안/입국 수속이 오래 걸려서 영국 히드로 공항은 그닥 평가가 좋은 편이 아니란다. 

http://www.heathrow.com/flight-connections 에서 환승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다. 

* '인천-런던-유럽 어딘가'로 환승하는 루트로 여행하고자 한다면 여유로운 환승 시간은 필수. 터미널이 다른 항공편 환승에 보통 90분이 소요된다 안내하고 있지만 수화물이 없는 경우에나 가능한 소리인듯 하다. 경험상 최소 2시간 30분~3시간의 시간은 있어야 안심할 수 있을 듯 하다. 


[환승시 수화물이 누락되면 어떻게 될까] 

보통 다음 항공편을 이용해 수화물을 보내고, 승객이 원하는 위치로 직접 배달해 준다. '사건2'에서 아시아나는 보홀에 있는 숙소까지 배달해 주겠다고 했었는데, (세부공항에서 다시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보홀의 위치상 짐을 받아보는데 시간이 하루 더 걸릴 것 같아서 세부 공항에서 받기로 했었다. 이 문제로 인한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어디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더라. 흑... 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