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AFRICA/레소토 Lesotho

레소토, 2만년전 부시맨의 흔적을 찾아 (Nazareth, Lesotho)

빛나_Bitna 2016. 6. 15. 06:54


세몬콩에서 다시 로마로 되돌아 온 우리. 오늘은 레소토를 떠나 남아공으로 돌아가는 날이다. 로마에서 남아공까지는 수도인 마세루 국경을 통과하게 되어 있는데,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쫘악 깔려있어 2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다고. 일정이 비교적 여유로운 탓에 수도인 마세루 Maseru에 들러볼까 고민했지만, 마세루는 요 몇 일 보았던 소박한 산골 마을과 다른 '그냥 도시'라는 말에 그냥 지나치기로 했다. 


세몬콩, 레소토 한가운데 폭포가 떨어지는 마을 (Semonkong, Lesotho) http://bitna.net/1677



레소토와 부시맨, 도대체 무슨 관계지? 


레소토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락 페인팅 Rock Paintings

부시맨 페인팅 Bushman Paintings이라고도 부른다.


출발 전, 지도에서 루트를 다시 한번 확인하는데 곳곳에 'Rock Paintings'이라고 쓰여있는 문구가 눈길을 끈다. 가만 생각해보니 요 몇일 레소토를 여행하면서 'Rock Paintings'이라고 씌인 표지판을 꽤 많이 지나쳤던 것 같다?! 도대체 이것의 정체는 뭐지? 호기심에 캠핑장에 문의해보니 이름 그대로 바위벽에 그린 그림이란다. 누가? 아주 오래 전 이 땅에 살았던 부시맨 Bushman들이. 


'부시맨 Bushman'이라면 이 사람들?


부시맨 Bushman? 그렇다. 우리가 아는 그 부시맨이란다. 영화 속에서 코카콜라 병을 들고 뛰어다니던 바로 그 부시맨들의 고향이 사실 바로 여기 레소토라고. '코카콜라 병을 든 부시맨'이 뭔지 모르는 사람은 그냥 '내가 젊구나~'라고 생각하면 된다. 좋은거다. ㅋㅋㅋ '수풀 Bush 속에서 사는 사람'이라는 뜻의 부시맨 Bushman은 사실 '샌 San (혹은 산)' 족으로 백인들이 아프리카를 침입하기 이전부터 대대로 아프리카 남부에서 살아온 민족이다. 몇 일전 우리가 방문한 '사니 패스 Sani Pass'의 이름은 '샌 족(부시맨)이 지나다니던 길'이라는 뜻이라고. 


사니패스, 아프리카에서 가장 높은 국경 (Sani Pass, South Africa) http://bitna.net/1674 


'부시맨 Bushman'으로 알려진 샌(San)족은 2만년 전부터 남아프리카 일대에 분포한 민족으로, 체구가 작고 전반적으로 흑색인종과 유사하나 피부는 황인에 가까운 것이 특징이다. 4천년 전부터 드라켄스버그 산맥과 레소토 산악 지대에서 수렵과 채집을 생업으로 가족단위 유동생활을 해왔으나, 18세기 남아프리카 일대를 침입한 백인들에 의해 나미비아와 보츠와나 사막 지역으로 이동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우물 주변에 정착해 가축을 키우며 생활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있다.  



부시맨이 살았던 그 곳으로, 


락 페인팅을 보러 가는 길

오, 입구는 그럴듯해.


레소토 여행의 마지막이라는 아쉬움과 약간의 호기심이 더해진 우리는 로마 근처에 '부시맨 락 페인팅 Bushman Rock Paintings'을 찾아나섰다. 유적지가 있는 장소는 지도에 잘 표시되지 않는 작은 마을이었는데, 유적지로 가는 표지판이 마을 이름보다 더 크게 세워져 있어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방문자 센터에서 우리를 맞아준 가이드

센터 내부

복제품을 볼 수 있다.

기념품도 판매한다.


전통 가옥 형태로 만들어진 방문자 센터에는 이 지역의 역사와 벽화에 대한 간단한 정보 그리고 기념품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오늘날까지 남아있는 벽화는 동굴 안이나 절벽 아래쪽에 자리하고 있다보니 벽화를 보기 위해서는 방문자 센터에 소속된 가이드 청년과 동행해야 했다. 


청년, 같이 가요~!

주변 풍경도 꽤 근사하다.

다리도 건너고

숲을 지난다.


센터에서 벽화가 있는 암벽까지는 걸어서 20분 남짓, 그리 먼 거리도 아니고 푸른 들판을 지나고 물도 건너고 해서 그런지 산책하는 기분으로 가뿐하게 가이드 청년을 따라 걸었다. 샌족은 무려 2만년 전부터 아프리카에 살아오면서 흔적을 남겼다. 수렵생활을 했기 때문에 그들의 거주지 선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물이었다고. 우리가 걷는 길 옆으로 흐르는 강물이 옛날에는 그들의 식수가 되었었겠지. 



검은 대륙에 남아있는 인류의 흔적, 


드디어 도착!


숲 길의 끝에는 부드럽고 평평한 흙바닥이 펼쳐져 있었다. 공간은 꽤 넓은 편이었고, 높이 솟은 암벽과 주변 나무들이 공간을 감싸고 있어 아늑했다. 샌족들이 이 곳을 거주지로 선택한 이유 역시 이 아늑함 때문이었을거다. 비바람이 몰아쳐도 단단한 동굴이나 암벽이 그들의 보금자리를 보호해주었을테니까.   


열심히 벽화를 설명중인 가이드 청년

저건 뭘 그린 것일까? 소?

가만 보면 사람도 있는 것 같다.

희미하지만 분명 남아있는 그림들

여기도 그림이 있고

이건 제법 선명한 편

솜씨가 꽤 좋았구나.


여기저기 둘러보는 우리를 암벽으로 안내한 가이드 청년은 압벽에 남아있는 벽화들을 하나하나 우리에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남아있는 벽화는 주로 소나 사슴처럼 생긴 동물들이 대부분이었는데, 당시 샌족들이 주로 사냥하던 동물들이었다고 한다. 그 말을 듣고 보니 동물들 주변에 그려져 있는 사람들은 동물들을 사냥하려는 듯한 그런 모습이로구나. 


사실 난 이 지형 자체가 꽤 신기했다.

캠핑장으로 써도 좋겠는데?

열심히 설명해주는 가이드 청년

이런 부끄러운 사람들 같으니!!!!!


암벽에는 꽤 많은 양의 벽화들이 남아있었다. 동물의 피와 식물 뿌리 등을 사용해 그렸다는 벽화들은 사실 우리가 기대했던 것만큼 크고 선명하게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가이드 청년의 말처럼 코끼리, 사자같은 야생동물들만 살았을 것 같은 수천년 수만년 전의 아프리카 대륙에 남아있는 인류의 흔적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들이었다. 글자가 없던 그 옛날의 삶을 이 그림들로 추측할 수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거라고! 암벽을 따라 그려진 벽화들을 바라보다 한글로 새겨진 낙서를 마주하자 얼굴이 화끈거렸다. 이 멀리 아프리카까지 와서 이런 몰상식한 짓을 하는 이들이 있다니, 부끄럽다, 부끄러워. 



마세루 국경을 지나 다시 남아공으로, 


깔끔한 포장도로

창 밖으로 보이는 마세루 시내


선사시대 암벽화를 감상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우리는 레소토와 남아공 국경을 향해 달렸다. 레소토에서 가장 지대가 낮다는 수도 마세루는 듣던대로 지금까지 지나온 레소토의 다른 도시/마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시내는 어딜가나 사람과 자동차들로 북적였고, 도시 한쪽에는 어울리지 않게 고급스런 백인들의 주거지가 높은 담으로 둘러싸여 있었으니까. 흑인마을과 백인마을, 여느 아프리카의 도시가 그러하듯 마세루에도 두 개의 도시가 존재하고 있었다.   


레소토와 남아공의 국경, 마세루 브릿지

국경 사무소 도착

안녕, 레소토!


레소토 Lesotho, 이름조차 생소한 이 작은 나라에서 보낸 몇 일 동안 우리는 참 많은 경험을 했다. 두 번의 도전 끝에 국경을 넘고, 아무도 없는 첩첩산중에서 길을 잃기도 했으며, 아찔한 산악도로를 겁도 없이 달렸드랬다. 그 속에서 우리는 '아프리카'하면 흔히 떠올리는 끝없는 초원과 동물의 왕국 대신 태초의 자연과 소박한 사람들의 삶, 그리고 검은 대륙에 남겨진 인류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드랬다. 남아공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작은 나라 속에는 우리가 잘 몰랐던 아프리카가 숨겨져 있었다. 


레소토와 동굴벽화 

- 영화 '부시맨'으로 알려진 샌(San) 족은 2만년 전부터 아프리카에 살아오던 토착민족이다. 

- 샌족은 사니패스를 비롯한 레소토 남부 산지에 4천년 전부터 거주하며 다양한 흔적을 남겼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동굴 또는 바위벽에 남긴 벽화이다. 

- 동물의 피, 식물 뿌리 등으로 그린 벽화는 주로 부족들의 생활상과 아프리카의 동물들에 대한 것이 대부분이다. 

- 레소토 안에서도 동굴벽화를 볼 수 있는 장소가 꽤 많은 편인데, 가장 대표적인 장소는 중북부에 있는 디디마 샌 아트센터 Didima San Art Centre 이다. 


- 레소토 여행정보 (일정, 비용, 여행팁 등) http://bitna.net/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