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츠역에 걸려있는 시간표.
스페인 여행의 마지막 도시였던 바르셀로나에서는 비교적 일정이 여유로운 편이었다. 느릿느릿 시내를 돌아다니는 것도 모자라 하루 죙일 카페에 앉아 여행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바르셀로나 주변에 있는 도시에 대한 정보들이 귀에 쏙쏙 들어온다. 그래서 나는 아침부터 바르셀로나 산츠역으로 향했다. 바르셀로나 근처에 숨어있는 히로나(Girona)에 가기 위해서...
기차를 기다리는 중
히로나는 바르셀로나에서 기차로 2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이다. 기차표를 구입하며 알게 된 사실은 산츠에서 떠나는 기차는 'Girona'행이 아니라 'Portbou'행이라는 것이다. 히로나는 바르셀로나에서 'Portbou'로 가는 길 위에 있는 도시라는... 그러니 기차시간표에서 'Girona'행이 없다고 놀라지 말 것!
기차내부
'Portbou'행 기차는 1시간 간격으로 운행하는데 열차 플랫폼에는 'Portbou'로 가는 기차만 정차하는 것이 아니라 자칫하면 엄한 방향으로 가는 기차를 탈 수도 있다. 안내판과 도착한 기차에 써있는 종착역을 확인한 뒤에 기차위에 올랐다. 'Portbou'로 가는 기차는 완전 넓고 쾌적하고 깨끗했다. 시원한 에어컨이 빵빵 나오고 넓직한 좌석에 화장실 자판기까지 갖추고 있었다. 소심한 나는 중간에 히로나역에서 어떻게 내려야 하나 걱정했는데 열차칸마다 다음 역을 알려주는 전광판이 있어 안심했다.
기차안에서...
산츠역에서 몇 명 탑승했던 것 같은데 내가 탄 칸은 나 혼자뿐이다. 내 방에라도 들어온 것처럼 편안하게 4인석 자리를 다 차지하고 앉았다. 좀 심심하긴 했지만 창 밖으로 보이는 시골길을 구경하고 밀린 여행일기도 쓰고 음악도 듣고 살짝 졸기도 하고 나름 알찬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2시간을 달려 나는 히로나에 도착했다.
히로나 신시가지
히로나에 대한 정보라고는 '바르셀로나 산츠역에서 히로나로 가는 기차가 있다.'가 전부였던 나는 기차역에서 순간 길을 잃었다. 작고 조용한 기차역은 이 도시의 조용함을 닮았다. 이윽고 보이는 Information center에는 젊은 청년 혼자서 열심히 관광안내를 하고 있었다. 그는 무작정 찾아온 나에게 커다란 히로나 지도와 함께 동선을 그려주었다. 걸어서 반나절이면 다 돌아볼 수 있단다. 지도와 물을 챙겨들고 기차역을 나섰다.
조용하고 깨끗한 도시
히로나는 강을 중심으로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나뉘는데, 옛 중세시대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는 구시가지는 그 자체로도 훌륭한 관광지이고 이 구시가지를 걷는 것이 히로나 여행의 핵심이란다. 도대체 구시가지는 어떤 모습이길래? 발걸음이 빨라졌다. 도시는 조용하고 깨끗했다. 파스텔톤으로 지어진 낮은 건물들은 신시가지라고 하기엔 너무 따뜻한 느낌이다.
저 멀리 보이는 카테드랄
구시가지에서 가장 높이 솟은 건물인 카테드랄은 히로나에서 방향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신시가지에서 카테드랄을 바라보며 발걸음을 재촉하던 중 강과 그 위에 놓여진 다리가 눈에 들어온다. 저 다리를 건너면 히로나 구시가지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아름다운 도시 히로나
구시가지로 가기 위해 다리를 건넌다. 그리 길지 않은 다리인데 건너는 속도가 줄어든다. 다리 위, 멋진 모습이 자꾸만 내 발길을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색깔의 건물들이 불규칙하게 늘어서 있는데 왠지 느낌이 좋았다. 푸른 하늘과 파스텔톤의 건물들 그리고 강물에 비친 그림자가 어디 기념엽서에나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기념사진을 찍고
구시가지로 들어서다.
조용하고 아름다운 것까지는 좋은데 오가는 사람이 너무 없으니 기념샷을 남기고 싶어도 쉽지 않다. (이럴 때는 혼자 여행다니는 것이 좀 서글프기도 하다.) 언젠가 누군가 지나가겠지 하는 생각에 다리위에서 도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나타난 가족여행객의 도움으로 기념사진을 하나 남길 수 있었다. 사진도 찍었겠다 슬슬 다시 걸어보련다. 조용한 도시 히로나, 들리는 것은 힘차게 걷는 나의 발소리와 흥얼거리는 노래소리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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