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다이푸르로 가는 버스 안
어디선가 불어오는 찬 바람에 잠에서 깼다. 여기는 우다이푸르로 가는 야간 버스 안이다. 2층으로 된 버스의 위쪽은 침대, 아래쪽은 의자다. 슬쩍 아래를 내려다보니 딱 한 자리 남은 침대칸을 나에게 양보한 신랑은 잘 넘어가지도 않는 의자에서 가방을 꼭 끌어안고 잠들어있다.
어제 자이살메르를 출발할 때만 해도 더운 날씨 때문에 창문을 열기 위해 낑낑댔는데 (에어컨 버스일리가 없잖아?!) 지금은 너무 추워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라니... 이런 날씨를 누가 예상이나 했겠는가! 몸을 잔뜩 웅크리고 추위를 견뎌보지만 소용없다. 제대로 고정되지 않아 조금씩 열리는 낡은 창문이 야속하고, 아무 생각없이 자켓을 짐칸에 넣어버린 내가 원망스러울뿐이다.
이른 아침의 우다이푸르
난 결국 다시 잠들지 못했다. 그렇게 추위와 싸우며 뜬 눈으로 밤을 보내고 나서야, 우리는 우다이푸르에 도착했다. 짐 칸에 실었던 커다란 가방을 손에 넣자마자 쑤셔넣었던 자켓을 꺼내입었다. 온몸에 다시 피가 흐르는 느낌이다. 이제 살았구나!
버스에서 내렸다. 낯선 도시의 차가운 공기가 훅- 내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침대칸이었지만 덜컹거리는 버스에서의 하룻밤이 편할 수 있을까, 주변을 둘러보니 다른 여행자들도 혼이 빠진듯한 표정이다. 어제 버스를 탔을 때 보여줬던 발랄함은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야간버스의 후유증을 털어내기도 전에 우리는 수많은 릭샤기사들에게 둘러싸였다. 새벽부터 어디서 이렇게 기운이 나는건지 저마다의 방법으로 승객 유치에 열을 올린다. 그래, 여긴 인도다. 처음 발을 딛는 순간부터 떠나는 그 순간까지 정신차릴 틈이 없는 나라. 이른 아침이라고 예외일 수 없지. 이제는 거의 본능적으로 튀어나오는 멘트들로 릭샤기사와 협상을 하고 짐을 실었다. 어째 지금 이 순간엔 나보다 배낭이 더 든든해 보인다. 흐물대는 내 몸과 달리 항상 같은 모습을 지키고 있으니까.
아저씨 굿모닝
모닝 티타임
끊임없이 숙소를 소개시켜 준다고 하는 릭샤기사를 뿌리치고 랄가트(Lal Ghat) 앞에 내린 우리의 눈에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하늘이 보였다. 이제 조금 있으면 해가 뜰 시간이로구나. 지금까지 여행을 하면서 일출을 본 것은 손에 꼽히는 게으른 우리에게 해가 뜨는 모습은 신선하기까지 하다.
버스에서 만나 함께 릭샤를 타고 온 스위스 아가씨가 아침 티타임을 갖자는 근사한 아이디어를 내놓는다. 그래, 그래! 붉게 물들기 시작한 하늘, 선선한 아침공기는 언제 우리가 다시 보고 느낄 수 있을지 모르는 거니까. 이제 막 영업을 시작하는 노점에 자리를 잡았다. 이빨빠진 유리컵에 담겨나오는 짜이는 언제 먹어도 맛있다. 커피중독인 내가 커피를 잠시 쉴 수 있을만큼!
사비나(Sabina)는 스위스에서 온 의사 아가씨다. 의학드라마에 나올법한 괴짜 여의사 같은 이미지랄까. ㅋㅋ 설마 번역기 돌리고 있는건 아니겠지...ㄷㄷㄷ;; 이번 여행이 무려 일곱번째 인도란 말에 '이 아이 뭔가 범상치 않겠구나!' 싶었는데, 그녀의 이야기가 이어질수록 우리 부부는 그냥 걸음마하는 아기 여행자가 된 기분이었다. 특히 자전거로 동남아와 중국을 여행한 이야기와 아프리카에서 의료봉사하던 시절의 에피소드는 재밌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고,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어린 나이(그녀는 난보다 한 살 어리다.)에 전세계에서 이렇게 많은 것을 경험했다니 놀랍기도, 부럽기도 했다.
난 그녀와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다. 버벅이는 나를 재촉하지 않고 재미나게 들어주는 자세도, '한국'에 대해 묻는 호기심 가득한 그녀의 눈빛도 좋았다. 그녀도 역시 우리가 맘에 들었나보다. 우린 한 목소리로 두 번째 짜이를 주문했으니까.
여행을 하다보면 수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그 인연들은 계속 이어지기도 하고 그 순간에서 멈춰버리기도 한다. 이 아가씨와는 왠지 긴 인연으로 남을 것 같다. 예상대로 우린 아프리카 여행을 마치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스위스로 날아갔다.
우다이푸르의 낮
사비나와 즐거운 티타임을 마치고 숙소에 체크인했다. 숙소에는 자이살메르에서 우리보다 먼저 넘어갔던 한국 사람들이 자리잡고 있었다. 정말 만나서 인사를 주고 받고 이야기를 나눴던 것이 전부였는데, 이렇게 다시 만나니 옛 친구를 만난 것처럼 반갑다.
우다이푸르는 앞서 여행했던 조드푸르, 자이살메르와는 너무 다른 느낌의 도시였다. 같은 라자스탄에 위치하고 있지만, 건조한 사막형 기후인 두 도시와는 달리 도시 한 가운데에 거대한 호수가 있기 때문이다. 호수는 우다이푸르를 특별하게 한다. 잔잔한 수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인도에서 느끼기 힘든 마음의 평온을 얻는 것 같으니까.
가게 구경중
가죽커버 일기장 득템!
우다이푸르의 밤
체크인을 하고 잠깐 눈만 붙이고 일어난다는 것이 결국...... 우리 부부의 우다이푸르 첫 날을 낮잠으로 채워버렸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들 어디론가 놀러나가고 우리만 숙소를 지키고 있었다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 우리의 게으름이 온 동네방네 소문날까 싶어서 뒤늦게 활동을 시작해본다.
한국 친구들이 알려준, 숙소 앞에 있는 샵에서 일기장을 샀다. 한국 친구들이 소개해줬다고 하니 가게 청년은 괜찮은 가격에 서비스로 커버에 원하는 문구를 새겨주었다. 꽤 길었는데도! 일기장도 마음에 들고 친구들덕에 귀찮은 흥정의 과정도 거치지 않았으니, 오늘 쇼핑에 대한 평가는 별 다섯개? 이제부터 일기를 부지런히 써줘야겠군. 엥? 뭔가 이상한 결론?
때마침 동네 산책을 마치고 돌아온 사비나가 우리를 발견했다. 함께 이것저것 구경하는 것으로 시작해 저녁식사와 이브닝 티타임으로 이어지는 우리들의 밤. 밤을 세워도 모자랄 수다라고나 할까. 우다이푸르의 첫 날은 새로운 친구들이 있어 즐겁다.
우다이푸르 숙소, 레이크뷰 게스트하우스 (Lake View Guesthouse) - http://bitna.net/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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