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하루 렌트한 자동차
달리고 달려서
물가도 지나고
나의 인도 가이드 우리 신랑님 말씀하시길. 우다이푸르에서는 차량을 빌려서 근교 여행을 떠나야 한단다. 교외에 유명한 유적지가 몇 개 있는데 대중교통으로 가기엔 쉽지 않기 때문이라고. 우다이푸르는 유적지보다는 동네 분위기에 취해보는 컨셉으로 여행했으니, 오늘 하루는 다시 백투더 히스토리인거다.
하루 종일 차량과 기사를 고용하는 것은 많은 사람이 공유할수록 저렴해 지는 법. 같은 숙소에 머물고 있던 제주커플(이제서야 신랑의 식중독 증세가 호전된 듯 보였다.)과 엊그제 조드푸르를 찍고 우다이푸르로 넘어온 혜연양까지 살살 꼬셔보니 의외로 쉽게 따라나선다. 당신들은 우리 부부에게 다 낚인 것이야! ㅋㅋ
저기가 쿰발가르 성
무사히 주차 완료
여기가 입구
입장료는 100루피!
우다이푸르에서 2시간 정도를 열심히 달린 자동차는 어느새 구불구불한 산길을 쉴 새 없이 오르고 있다. 좁고 가파른 산 위에 뭐가 있을까 싶지만 주변에 하나 둘 리조트들이 보이는 것을 보니 뭔가 의미있는 장소긴한가보다.
그렇게 도착한 쿰발가르 요새(Kumbhalgarh Fort). 우다이푸르에서 80km 거리라는데 산길을 지나와서 그런지 꽤 시간이 걸렸다. 입구에는 단체로 찾아온 인도 학생들로 북적인다. 인도 어딜가나 외국인 여행자를 쉽게 찾아볼 수 있었는데 아무리 둘러봐도 찾아보기 힘들다. 2~3시간 거리면 우다이푸르에서 오기 힘든 것도 아닌데... 그닥 특별한 것이 없는걸까?
여기 저기 사원들이 널려있다.
성 안으로 들어서면 순간 길을 잃었다. 저 높은 곳에 성채가 보임에도 불구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망설였다. 그도 그럴것이 성문안으로 들어왔지만 그 내부는 성이라기 보다는 산골마을에 가깝고, 성 안에 위치하고 있다는 무려 360여개의 사원들이 제각각 흩어져 있기 때문에.
잠깐동안 굳어버린 나를 풀어준 것은 나의 동행들. 함께 온 제주커플은 벌써 저 멀리 사진촬영에 열중이고, 오래된 유적지를 좋아하는 혜연양은 여기저기 눈에 띄는 사원마다 들어갔다 나왔다를 반복한다. 그래 뭐 언제 그렇게 진지했다고. 얘들아, 같이 가자~!
우뚝 솟아있는 성채
그렇게 우리는 성채 주변에 널려있는 사원들을 들락거리며 신나게 사진을 찍었다. 이 곳에 있는 사원 중 거의 대부분(약 300여개)는 자인교 사원이란다. 인도의 종교는 힌두교, 불교가 전부인 줄 알았더니 이슬람교에 이어 자인교까지 많기도 하다. 그래 대륙이니 이 정도는 되어야지. 이리저리 사원들 사이를 돌아다니면서 질리도록 보아온 힌두교 사원과의 차이점을 찾아보려 노력했지만 글쎄, 직접적으로 와닿는 것은 별로 없구나.
곳곳에 사원들이 숨어있다.
사원 둘러보기는 이 정도면 충분할 듯 싶다. 몇 백개씩 되는 사원을 다 둘러보는 것은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고, 사실 이 동네 사원은 안보다 겉이 훨씬 아름다우니까.
쿰발가르는 지금까지 방문했던 라자스탄 도시들과 느낌이 다르다. 그도 그럴것이 여전히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다른 도시들과 달리 이 곳에는 사람들의 온기를 느끼기 어려웠으니까. 물론 지금도 이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현지인들이 있지만 앞서 방문했던 도시들과 비교하면 죽은 도시처럼 느껴졌다. 산 속에 사람들도 도시로 도시로 이동했겠지, 일자리를 찾아, 문명을 찾아... 우리나라의 젊은 이들이 도시로 도시로 움직이는 것처럼.
열심히 올라보세
뒤로 보이는 풍경이 꽤 근사하다.
잠시 쉬었다가 본격적인 성채 오르기를 시작했다. 길은 판판하게 잘 다져져 있었지만 은근 경사도가 높은데다 더운 날씨가 더해지니 은근 숨이 찬다. 그리 큰 도시도 아니고, 깊은 산 속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방어할 수 있었을 것 같은데... 도대체 왜 이런 요새까지 만들어야 했을까? 당시에는 이 지역도 꽤나 잘 나가던 도시였거나, 당시 라자스탄의 지역싸움이 정말 엄청났거나, 내 맘대로 그 이유를 추측해 본다.
위에 올라가면 훌륭한 전망대가 있다.
나는 신나고, 혜연양은 잔뜩 겁나고. ㅋ
높긴 높구나.
드디어 정상에 올랐다. 건물 꼭대기는 이 지역에서 가장 훌륭한 전망대다. 약간의 고소공포증이 있는 혜연양의 몸이 움츠러드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높은 곳에 있으면 마음이 불안해져서 자꾸만 내려가고 싶어진다고.
말로만 듣던 고소공포증, (그녀가 알면 삐질지도 모르겠지만..ㅋㅋ) 내 눈엔 조금 신기했다. 난 아무렇지도 않은데, 저 멀리까지 펼쳐진 산을 내려다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속이 뻥 뚫리는 듯 시원하기만한데, 누군가는 반대로 속이 꽉 막히는 것 같다니.
산 위에 구불구불 장벽이 서 있다.
난간을 붙들로 쉽게 발을 떼지 못하는 그녀를 한참 바라보다 손을 내밀었다. 힘들게 여기까지 올라와서 이 멋진 경치를 보지 않고 내려가는 것은 너무 아쉽잖니! (당연히 절대 떨어질 리 없겠지만) 떨어지지 않게 꼭 잡아주겠다며 살살 꼬드겨? 잔뜩 움츠린 귀여운 아가씨를 난간 바로 앞까지 데려왔다.
- 어때? 멋지지?
- 와! 진짜 멋있어요! 언니 저 이런 거 처음 봤어요!
방금전까지 바짝 긴장하고 있던 그녀의 얼굴에 이제서야 웃음꽃이 핀다. 물론 나를 잡은 손에는 힘이 빡 들어가 있었지만. ㅋㅋ 그래,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거다. 7개의 두터운 성벽, 인도판 만리장성이라 불리는 36km 길이의 장벽은 옛 사람들의 불안함이 만들어낸 것인지도 모르겠다.
내려오는 길
선생님들이 더 신나서 사진에 열을 올린다.
저 뒤로 아이들에게 붙잡힌 우리가 보인다.
꼬마들은 언제봐도 예쁘다니까.
그렇게 한참을 바라보다 발길을 돌렸다. 내려가는 길은 확실히 걸음이 가볍다. 오늘이 이 동네 전체 소풍날인지 수 많은 학생 단체가 반대 방향에서 올라오고 있었다. 줄 맞춰 올라오는 꼬맹이들이 귀엽다.
살짝 눈이 마주친 꼬마 아가씨에게 손을 흔들어줬더니 하나 둘 우리 앞에 꼬맹이들이 몰려든다. 어라...? 'What's your name?', 'Where are you from?' 아이들이 아는 영어는 이 두 문장이 전부인지 구간반복기마냥 우리에게 같은 질문을 쏟아놓는다. 아, 어떻게 하지? 초롱초롱한 꼬마들의 눈빛은 구걸하는 아이들의 건방진 눈빛과는 달라도 너무 달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우린 그렇게 서 있었다. 저쪽에서 선생님들이 달려오는게 보인다. 이제 빠져나갈 수 있겠구나 싶었는데, 그들은 대뜸 내게 카메라를 내민다. 애들이나 어른이나... 아... 이 놈의 인기 식을 날이 없구나! ㅋㅋ;;;;;
그렇게 수십장의 사진을 찍고 찍혀주고 나서야 우린 그들에게서 풀려날 수 있었다. 내 앞까지 뛰어와 Bye!!하며 손을 흔드는 아이들이 모습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방금까지 죽은 도시처럼 조용하던 성 안에 이제서야 따뜻한 기운이 퍼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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