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헤랑가르 성 입구
무려 한국어 오디오 가이드가 있다.
입장권도 나름 이쁨
자스완트 타다를 둘러보고 드디어 메헤랑가르 성(Meherangarh Fort) 앞에 섰다. 본격적인 관람을 위해 티켓을 끊고서 놀란 것이 몇 가지 있었으니, 1) 인도답지 않게 학생할인을 해준다는 것과 2) 입장료에 오디오 가이드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 그리고 3) 준비된 오디오 가이드에 한국어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메헤랑가르 성의 입장료는 300루피, 학생 요금은 250루피다. (물론 인도 사람은 훨씬 저렴하지만 이젠 그냥 그러려니 한다.)
지금까지 방문했던 유적지와 비교하면 가격은 비슷한데 한국어로 된 오디오 가이드를 무료로 들을 수 있다니 들어가기 전부터 만족스러웠다.
들어가볼까?
왕실 건물이 꽤 근사하다.
오디오 가이드에서 흘러나오는 반가운 우리말, '안녕하세요'에 나도 같이 인사하며 성 안으로 들어섰다. 1459년 건립당시 메헤랑가르는 구릉 위에 지어진 권력의 상징이었다고 한다. 산 아래에서 봤을 때 높은 성벽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보니 화려한 창틀문양이 꽤 아름다웠다. 영원한 권력을 꿈꾸던 남자들에게도 이런 예술적 감각이 숨어있는거다.
성 안으로 들어가는 길
메헤랑가르 성은 내부로 들어가기 위해 총 7개의 문을 통과하도록 되어 있는데, 문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개인적으로 문에 얽힌 사연보다 인상적이었던 것은 각 성문마다 바로 앞에서 항상 격하게 길이 꺾이게 만들어진 구조였다. 이는 과거 코끼리 부대가 코끼리가 빠른 속도로 돌진하는 것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란다. 성 자체가 하나의 전술인거다.
사띠의 흔적
내가 웃는게 웃는게 아니야;
성 안으로 가는 마지막 문 앞에 한참동안 나의 발길을 붙잡아 둔 주황색 손도장, 이는 사띠(Sati)의 흔적이다. 사띠란 남편이 죽고 나서 화장을 거행할 때 아내가 불 속에 뛰어들어 함께 죽음을 맞이하는 의식을 말한다. 상상만해도 끔찍한 이 의식이 과거에는 정조와 영원한 사랑의 상징이었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난 동의할 수 없다. 솔직히 어떤 사람이 맨 정신에 불구덩이에 뛰어들어 죽음을 맞이하고 싶겠는가? 실제로 의식을 진행하는 여성들 대부분은 술과 마약의 힘을 빌린다고 한다.
사띠로 죽음을 맞은 여성은 여신으로 승격되고 그녀를 위한 사원이 세워진다. 이 과정은 그녀의 남은 가족들에게 엄청난 경제적 부를 안겨준다. 여기서 난 네팔에서 본 꾸마리를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벽에 새겨진 손도장 위에 내 손을 올려보았다. 너무 작다. 그녀는 정말 영원한 사랑을 상징하는 여신일까? 아니면 이권을 노린 주변 사람들이 저지른 범죄의 희생양일까? 도대체 누구를 위한 삶인가? 죽은 사람은 말이 없는 법이다.
오른쪽이 박물관 입구
즉위식을 했던 자리라고
아저씨 옆에 있는건 마약이라고 했었는데...
화려한 건물들
이제서야 왕궁 건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 곳은 원래 왕실의 그리고 마하라자 후손들의 거주 공간이었는데, 현재는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마하라자의 후손들은 현재 우메이드 바반 펠리스(Umaid Bhawan Palace)에서 거주하고 있다.
화려한 왕실 소장품들
세밀화도 빠질 수 없지
박물관은 왕실에서 사용하던 가마를 시작으로 무기, 장신구, 그림 등등 수 많은 소장품들이 깔끔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제대로 된 설명하나 없이 간단한 라벨만 붙어있던 인도 국립박물관보다 훨씬 훌륭했다. (당연히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중요한 물건들에 대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왕실의 소장품 뿐 아니라 전투에서 승리한 기념으로 적군에서 가져온 물건들도 꽤 많은 편이었는데, 이 모든 것들이 과거 이 곳이 얼마나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던 지역인지를 말해주고 있었다.
방 하나하나가 엄청 화려하다.
창 밖으로 보이는 모습도 근사하고.
왕실 소장품들이 전시된 전시관을 지나면 옛 왕실 사람들이 거주하던 공간들이 나타난다. 온통 거울로 도배된 방도 있고, 성당에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화려한 스테인드 글라스도 쉽게 눈에 띈다. 이 아름다운 공간들을 완성시켜 주는 것은 창 밖으로 보이는 조드푸르의 풍경이다.
천장에 있는 크리스마스 볼 ㅋ
여긴 침실이라고 했었나?
박물관 관람 끝!
흥미로웠던 곳은 33대 마하라자의 개인 휴식공간 중 하나인 타캇빌라(Takhat Vilas). 그 시기는 영국식민지 시절로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천정에 매달려 있는 크리스마스 볼. '인도 사람들은 무슨 장식을 이렇게 안 어울리게 하는건가' 생각했었는데 나름 문화적 교류의 흔적이었다고나 할까. 설명을 듣고 자세히 살펴보니 벽면 회화에서도 서양의 느낌이 많이 묻어나고 있었다.
가이드 반납시간(관람시간이 끝나기 전까지 반납해야 한다. 그래야 여권을 받을 수 있다.)이 다가와 마음이 급해졌다. 덕분에 마지막 몇 개의 설명은 놓쳤지만 덕분에 몰랐던 사실들도 알아가며 관람할 수 있었으니 만족하련다.
성에서 내려다보이는 조드푸르 시내
대포도 남아있다.
블루시티, 김종욱찾기에 나왔던 그 곳
메헤랑가르 성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내려다보는 블루시티의 모습.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영화 '김종욱찾기'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곳이다. 어떤 이는 '블루시티'란 이름에 비해 파랗게 보이는 동네가 그리 크지 않다고 실망하기도 하는데
내 눈에는 참 아름다웠다. 미묘하게 다른 파란색으로 색칠된 집 하나하나, 해가 지고 하나 둘 켜지는 노란 전등 하나하나가 마치 점묘화를 보는 것 같았다.
이제 성 밖으로
어느새 성에도 조명이 켜졌다. 밤에 보는 모습은 또 다른 색다름이구나.
이 곳에서 유난히 많은 한국 여행자들을 만났는데, 대부분은 영화 '김종욱찾기' 덕분에 사랑의 열병에 빠져있었다. 그들의 사연을 들으면서 나름 조언?도 해주고, 그 중 한 친구가 건네준 영화 파일을 보면서 (그래, 우린 이 영화를 못봤었다.;;; ), 우리의 연애시절을 새록새록 떠올렸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우리가 연애를 시작할 때, 인도 (당시 남편이 혼자서 긴 인도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였다.)와 여행(우리 둘 다 여행에 미쳐있다.)이 어느 정도 영향을 준 것 같은데...?
영화 속 조드푸르는 빈티지한 색감이 근사한 도시다. 심지어 영화에는 공유와 임수정의 로맨스도 있다. 하지만 현실의 조드푸르는 영화와 참 많이 다르다. 여느 도시와 마찬가지로 우리 부부는 지겹도록 릭샤 기사와 흥정하고, 좁은 골목길에 널려있는 소님들의 흔적을 피하기 바빴으니까. 물론 당연히 어디에도 공유같은 남자, 임수정같은 여자는 없었다. ㅋㅋ 하지만 우리 부부의 머릿속에 조드푸르는 아름답고 낭만적인 도시다. 이 도시에서 만난 수 많은 친구들의 낭만이 묻어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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