릭샤를 타고 올드델리로
자미 마스지드 앞에 도착!
10월 2일은 인도 사람들이 신처럼 모시고 있는 인물 간디의 생일이자 인도의 국경일이다. 덕분에 항상 사람들로 북적이는 빠하르간지도 오늘만큼은 조용하다. 인도에서, 델리에서 이렇게 여유로울 수 있는 날이 얼마나 될까? 하지만 인도에서 여유로움을 즐길 수 있을거라 기대한 내가 바보였다. 릭샤를 타고 '자미 마스지드(Jami Masjid)' 앞에 내리자마자 어마어마한 인파를 마주해야 했으니까.
저 멀리 보이는 모스크
손금보는 아저씨
모스크 앞 장터는 사람들로 가득
자미 마스지드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 앞에 형성된 거대한 시장을 지나야만 한다. 정신없이 복잡한데다 사람들로 가득한 것이 빠하르간지와 비슷한 느낌이었는데 가만히 살펴보면 다른 점이 눈에 띄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흰 옷과 모자를 쓴 이슬람교도들이라는 것. 현재 인도의 국교가 힌두교임을 감안하면 이 나라에서 이슬람교의 비중은 정말 소수일텐데... 인도 인구가 정말 많긴 많은가보다.
모스크 입장 준비!
모스크에 입장하기 위해 여자들은 다리, 팔, 머리까지 가려야 한다고 해서 미리 준비한 스카프로 칭칭 감고 입구 앞에 섰다. 그런데 입구에 있는 아저씨가 왠 요상한 자루같은 옷을 건네주며 입으란다. 내가 바보같은 사진을 찍히지 않으려고 이 더위에 긴소매 옷을 입고 왔건만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이냐! 그는 다른 여자 여행자들에게도 비슷한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여자들끼리 온 서양 여행자들에게 자루같은 옷을 건네주며 은근슬쩍 손으로 더듬기까지 하더라. -_-
그의 무례함은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무슨 빚독촉하듯이 여행자들에게 오더니 입장료는 무료인데 카메라는 대당 300루피(약 6천원)을 내란다. 그것도 카메라는 물론 (카메라가 있는) 휴대폰도 다 대당 돈을 내란다. 사진은 카메라 한 대로만 찍을거라고 했더니 안된단다. 그럼 카메라를 보관해 줄 장소는 없냐고 했더니 없단다. 도대체 이게 무슨 배짱이란 말인가!
무슨 벼슬이라도 달고 있는 양 떵떵거리는 아저씨 앞에 우리를 포함한 외국인 여행자들은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하나 둘 입장을 포기하고 등을 돌리기 시작했고, 우리 부부도 들어가지 않기로 했다. 돈도 돈이지만 그의 무례한 태도에 기분도 상할대로 상했기 때문이다.
바라만 본 모스크
자미 마스지드(Jami Masjid)는 무려 2만 5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인도에서 가장 큰 모스크다. 이 곳의 설립배경에는 타지마할로 유명한 샤 자한이 다시 등장한다. 그는 무굴제국의 중심지를 아그라에서 델리로 이동시켰고, 인도 최대 규모의 모스크를 델리 한복판에 세웠다. 1644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그가 사망한 이후에 완공되었으니 샤 자한의 마지막 작품이라고 할 수 있겠다.
타지마할에서, 아그라요새에서 보았던 샤 자한의 흔적을, 무굴제국의 아름다운 예술작품을 나는 보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 이 기분으로 그 무엇이 눈에 들어올 수 있겠는가. 빠른 걸음으로 모스크 앞 시장을 빠져나간다. 아무리 돌아봐도 내 눈에는 론리플래닛이 말하던 아름다운 예술작품은 보이지 않았다. 어리석은 이의 욕심으로 얼룩진 모스크만 슬프게 서 있을 뿐.
- 여성의 경우 입장시 다리, 팔, 머리카락을 모두 가려야 한다. 입구에서 자루같은 옷을 빌려주긴 한다.
- 모스크 입장료는 없지만 카메라 1대당 300루피다. 카메라가 달린 핸드폰, 패드도 모두 해당되며 입구에 맡아주는 곳은 없다. 언쟁을 원하지 않는다면 촬영할 카메라만 들고 가자.
레드포트 앞
누가 나를 따라오는 것도 아닌데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이렇게하면 이 불쾌함을 얼른 털어버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그렇게 도착한 '붉은 요새(Red Fort)'는 엄청난 인파에 둘러싸여 있었다. 설마 오늘 무슨 행사가 있는 건 아니겠지?
매표소는 마비직전
외국인 창구는 한산
티켓 구입! 무려 250루피.
티켓 판매소도 예외는 아니었다. 티켓을 구입하기 위한 사람들의 줄이 어찌나 길던지 오늘안에 우리가 입장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구나. 난감한 기색을 감출 길이 없는 우리 앞에 나타난 경찰 아저씨. 조용히 우리를 외국인 전용 매표소로 데려다 주고, 긴 입장줄을 한큐에 통과해 안으로 들어가게 해주었다. 그래도 뭔가 아쉬웠는지 안으로 들어가면 순서대로 만날 수 있는 건물에 대한 설명까지 덧붙여준다. 방금까지 자미 마스지드에서 만난 그 무례한 아저씨 때문에 상했던 마음이 조금 치유되는 것 같다.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냔 말이다!
레드포트 안으로
입장하자마자 보이는 상점들
입구를 통과하자마자 거대한 상점거리가 펼쳐진다. 과거에는 요새안에 거주하던 왕족, 귀족을 위한 상점이, 지금은 관광객을 위한 기념품 가게가 빽빽하게 들어서있다. 평소라면 상인들은 호객행위에 열올리고 있었을텐데, 오늘만큼은 엄청난 방문객 숫자에 정신없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왕의 접견실이라고
지도를 살펴볼 틈도 없이 인파에 휩쓸려 안으로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 차례로 눈에 들어오는 붉은 요새의 왕궁. 타는 듯한 붉은 색, 아치형 기둥들, 화려한 내부 조각들. 아그라요새에서 보았던 건물들과 느낌이 비슷하다. 같은 사람이 만들었기 때문일까?
줄줄이 서 있는 건물들
아름답다.
텅 빈 공간
방금까지 보았던 왕궁과 다른 쪽 방향에 펼쳐진 잔디밭에 하얀색 건물들이 늘어서 있다. 앞서 보았던 건물들이 웅장하고 남성적인 느낌이라면 이 곳의 건물들은 여성스럽고 화려하다. 왕실 사람들의 거처, 왕실목욕탕, 모스크 그리고 연설을 위해 만들어진 파빌리온 등등 이 곳의 건물들은 정치적인 목적보다는 왕실 사람들의 생활을 위해 만들어졌다.
과거에는 천장과 벽면이 온갖 보석들로 장식되어 있었는데 영국 식민지 시기에 모두 도난당했다고. 무굴제국의 건축물에서만 볼 수 있는 우아한 곡선의 아치와 섬세한 모자이크도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아쉬운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앉아서 좀 쉬자
여기 물이 가득했다고.
관람을 마치고
끊임없이 밀려드는 인파를 피해 조용한 나무그늘에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한참동안 요새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했다. 옛날에는 지금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서 생활하고 있었겠지. 그때는 성 주변 해자에도, 분수에도 물이 가득했겠지, 건물마다 호화로운 장식들로 덮여있었겠지.
무굴제국의 황제들은 영국의 침략이 있기 전까지 이 곳에서 생활했었다. 식민지 시대에는 이 곳에 지배의 상징으로 영국 국기가 걸려있었고, 1947년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면서 다시 인도 국기가 게양되었다고 한다. 인도 사람들에게 붉은 요새는 역사적으로 큰 의미를 지닌 곳이다. 화려한 실내 장식은 제 자리를 잃었을지 몰라도 펄럭이는 인도 국기는 지금까지 제 자리를 지키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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