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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듣던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다.

빛나_Bitna 2008. 10. 20. 23:08

 가족을 납치했다, 카드발급을 받아라, 대출을 받아라 등등 요즘 뉴스에서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는 보이스피싱(Voice phishing). 주변 친구들중에 가족을 납치했단 내용의 전화를 받았단 이야기를 들어서 그런가보다 했는데 오늘 나도 보이스피싱 전화를 받았다. '바보같이 왜 그런 전화에 속아?'라고 생각하지 말라. 그들도 점점 진화하고 있으니까...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오늘 아침 내게 걸려온 전화의 내용은 이랬다. 자신은 중구 경찰청 경찰 박XX인데 어제 다른 사람의 개인정보를 이용해 대포통장을 만들고 사기를 치려던 일당을 검거했단다. 그리고 피해자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나의 정보가 나왔다는 것이다. (그들은 나의 핸드폰 번호, 이름, 주민번호까지 알고 있었다.) 그는 내게 용의자 3명의 이름을 대면서 아는 사람인지를 물어보더니 그들이 H은행, S은행에 내 명의로 통장을 개설했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러더니 나의 거래은행에 대해 물었다. 그래서 난 두 은행과는 거래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는 그들로 인해 내가 피해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몇 가지 확인이 필요하기에 이후 다른 전화가 오게 되면 협조를 요한다고 했다. 사실 여기까진 별 의심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 몰라 그의 신분과 연락처 등을 물었는데 그는 내게 자신의 이름, 소속, 연락처를 밝히고 전화를 끊었다. (후에 알아보니 소속과 대표번호는 진짜 그 경찰청의 번호였다.)
 
조금 후 다시 전화가 걸려왔는데 이번에는 법무부 검찰과 권XX란다. 앞서 경찰에게 사건의 내막을 들어 알고 있냐고 내게 확인을 한다. 그러면서 내가 피해자임을 증명하려면 내가 금융권에 거래하고 있는 내역을 알려줘야 한단다. 거래하는 은행과 잔고를 알려줬더니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유난을 떤다. 그러면서 요즘 보이스피싱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의심을 한다며 내게 114에 전화를 걸어서 법무부 검찰과 대표번호를 확인해 보라고 하는 것이 아닌가?! (마찬가지로 내 핸드폰에 찍힌 발신번호는 법무부 검찰과 번호와 일치했다.) 여튼 그리고 내가 거래은행과 규모를 이야기 했더니 앞으로 3개월간 금융감독원에서 나의 자산을 보호해 주겠단다. 내가 가진 자산에 변화가 생길때마다 본인이 거래한 것인지 확인한다는 것이다. 난 관련된 내용을 서면으로 달라고 요청했고, 그는 팩스를 통해 '법무부가처분명령'이란 제목의 문서를 보내 주었다.
 

사용자 삽입 이미지

그 문제의 서류 (증거물로 가지고 있다.)

나름 여기까진 그럴 듯 했다. '개인정보 유출이라니 골때리게 생겼네..'하며 사촌동생한테 전화해 봐야겠다 생각하며(나의 사촌동생은 경찰) 전화를 끊으려는데 뭔가 또 절차가 남았단다. 문서를 보면 알겠지만 가처분명령을 먼저 시행하려면 내가 가진 재산이 합법적인 것인지 아닌지 먼저 검사를 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흐음.... 지금까지 긴가민가했던 이 전화에 대한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  

나)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면 되죠?
사기꾼) 금융감독원에서 본인의 재산이 합법적인지 평가를 하고, 그 후에 재산을 보호해 드립니다. 금융감독원에서 해당 피해사례를 위해 만든 신탁계좌에 가지고 계신 유동성자금을 입금해 주시면 90분간 조사를 통해 소정의 수수료와 함께 되돌려 드리겠습니다.

뭐라고?! 너 지금 '입금'이라고 했느냐!!!!! 니들 지금 나한테 사기를 치는거라고 불었겠다?! 이런 쓰레기같은 것들이 있나!!!!!
 살짝 열받은 나는 조목조목 따지기 시작했고 그는 자기는 절대 보이스피싱이 아니라고 그럴듯한 썰을 풀어댔다. 그럼 당신의 주민등록증과 공무원증을 나한테 팩스로 보내보라고 했더니 도리어 내게 화를 내는 것이 아닌가?!!!! (아주 ㅈㄹ을 하세요~)

말을 어찌나 잘 하는지 왠지 계속 말을 섞었다간 뭔가 말려들 것 같아서 일단 전화를 끊고 112에 신고를 했다. 진짜 경찰아저씨와 통화하는 와중에도 내 핸드폰으로 끊임없이 전화가 걸려오고 있었다. 그냥 끊는다고 이것들을 피해갈 수 없겠다 싶어 전화를 다시 받았다.
 

사기꾼) 왜 전화를 받지 않으셨죠?
나) 내가 지금 당신때문에 일을 하나도 못했거든? (이제 반말인거다..)
사기꾼) 그럼 계좌를 알려드리겠...
나) 됐고. 협조 안했다고 나를 잡아가든. 내 금융거래를 정지시키던 그건 당신이 알아서 하고 그 후에 일어난 일에 대해서는 내가 알아서 하겠으니 전화하지 말어.
사기꾼) 협조안하시면 공무집행방해죄로 문제가 될 수 있으며, 가처분명령서에 보시면 아시겠지만 12시이후부터는 본인 금융거래가 모두 불가능하게 됩니다. 이걸 해지하려면 변호사를 직접 구해서 진행해야 하며...
나) ㅇㅇ 알았어. 알았으니까 난 안하겠다고. 말 디게 많네.
사기꾼) 왜 갑자기 협조를 안하시겠다고 태도를 바꾸신거죠?
나) 내가 당신을 어떻게 믿고 돈을 보내? 너라면 믿겠니?
사기꾼) 제가 충분히 제 신원과 사건에 대해서 충분히 설명을 했고....
나) 됐고!! 당신말대로라면 오늘 12시가 지난 후에 내가 은행거래에 아무 문제가 없으면 니가 사기꾼인거지? 그치?
사기꾼) 말씀이 너무 지나치신거 아닙니까?! (계속 나한테 성질낸다.)
나) 묻는 말에나 대답해. 내가 은행거래에 아무 문제 없으면 넌 사기꾼인 거고 난 진짜 경찰에 신고하면 되는거냐고 이 !)%*#)%()#%( 아!!!!!
사기꾼) 그렇죠.  
 
금융거래정지? 정지는 무슨.... 난 오늘 은행가서 정기예금 새로 들었다. 금융거래엔 전~혀 문제가 없었으며 은행에 개인정보유출과 관련된 보호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혹시나 싶어 SKT에 전화를 했더니 수신자부담전화는 아니었다고 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없는 부분이 많았는데 나는 왜 좀 더 빨리 알아채지 못했나 싶다. 아무래도 경찰, 검찰은 평소 접해볼 일이 없고, '개인정보유출'이란 소재는 '동생이 납치됐다'는 것보다는 조금 더 설득력있는 소재였기 때문이 아닐까..? 개인정보를 유출해서 사기치는 주제에 개인정보 유출됐단 미끼를 던지다니 나름 여러가지로 머리 잘 굴렸구나 싶다.

경찰청(1379번)에도 신고했다. 자세한 설명과 함께...  요즘 보이스피싱은 점점 발전해서 국가기관에서 일하는 사람의 이름, 연락처 등을 알고 있기도 한댄다. 나름 모두 해결(?)하고 나니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알려야 겠단 생각이 든다. (특히 연세가 좀 있으신 분들은 정말 조심..) 이렇게 지능적인 것들에게 일단 휩쓸리게 되면 좋을 것 없으니까... 점점 지능화되는 보이스피싱. 알면서도 당할 수 있으니 조심 또 조심하자.


+ 이런 포스트는 어디 상단에 걸어줘야 하는거 아냐? 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