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스 역
바르셀로나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작은 도시 시체스. 멋진 바닷가를 품고 있는 곳이라 하여 부푼 기대를 안고 기차에 몸을 실었다. 산츠역에서 출발하는 지하철은 히로나로 가던 렌페와는 전혀 다르다. 인천으로 가는 지하철을 타는 느낌과 비슷하다고 할까? 중간에 내려야 하는데 방송도 들리지 않고 다음역을 알려주는 전광판도 보이지 않는다. 어쩌지? 일단 출구와 가까운 곳에 자리를 잡고 기차가 멈출 때마다 역 이름을 확인했다. 중간중간에 물놀이 용품을 챙겨들고 열차에 몸을 싣는 이들이 눈에 띄는 것을 보니 제대로 가고 있긴 한가보다. 기차를 타고 1시간 정도가 지난 뒤 나타난 Sitges역, 제대로 찾아왔구나!
사람들을 따라 걷다.
휑한 역 앞에서 잠시 당황하다 이내 발걸음을 떼었다. 솔직히 이제 휑한 역에 놀랄 수준은 지났으니까... 이 도시에서 특별히 보고자 하는 것이 없었기에 앞에 가는 사람들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가벼운 옷차림에 보따리를 든 사람들은 모두 해변으로 가는 것일테니까...
와우 바다다!
좁은 골목이 좀 넓어진다 싶었는데 눈앞에 푸른 바다가 우리를 맞이한다. 와우....!!! 방금전까지 더위에 지쳐있었는데 어디서 이런 힘이 나오는건지 후다다닥 바다를 향해 달려갔다. 전 세계 어딜가도 다 똑같은 모습의 바다인데 항상 어떻게 이런 설레임을 주는걸까...?
해수욕을 즐기는 사람들
해변에 끝없이 펼쳐진 알록달록한 파라솔과 의자에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사실 이 동네가 누드비치로 유명하다 하는데 아무리봐도 누드이신 분들은 없다... 아니 몇몇 상의 탈의이신 분들이 있으니 극히 드물다고 할까나? 바르셀로나 해변에는 젊음의 기운이 넘치고 시체스 해변은 휴가나온 가족들이 많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하다.
시체스 해변에서 한 컷
바다로 뛰어들고 싶어!
맨발로 해변을 따라 걷는다. 푸른 지중해는 놀랄만큼 차갑고 투명하다. 마음같아서는 이 시원한 바다에 뛰어들고 싶지만 그러기에 나는 너무 준비가 부족하다. ㅠ_ㅠ 해안을 걷다보니 옷을 제대로 갖춰입은(?) 사람은 나뿐이고, 비키니라도 하나 챙겨왔어야 하는데 후회해봐야 소용없을 뿐이고...!!! 다시한번 강조하지만 스페인 여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하루이틀은 해수욕을 위해 일정을 비울 것!!!
Sitges - 너무 예쁘다.
너무 아름다운 바다인데 바라볼수록 슬퍼져서(?) 얼릉 발길을 돌렸다. 작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크고 작은 숙소들이 가득하다. 보나마나 끝내주는 뷰를 가졌을테니 가격이 만만치 않겠지만 한번쯤 이런 조용한 해안도시에 머물고 싶단 생각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창으로 바라보는 넘실대는 푸른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울지 상상이라도 해본다. 이런 곳에 박혀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너무 길면 지루해질테니 딱 한달쯤이면 괜찮지 않을까?
휴식엔 커피!
지친 나를 달래주는 것은 역시나 커피 한 잔.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것, 은근 폼나기는 하지만 뜨거운 날씨덕에 쉽지만은 않다. 그래서 얼음을 부탁해서 즉석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만들어 버렸다. 이 동네 커피야 워낙 진하기 때문에 얼음이 녹아도 그 깊고 진한 맛은 지워지지 않는다. 아.. 좋구나...!!!
골목안으로..
휴식을 마치고 그늘도 찾을 겸 골목안으로 들어섰다. 높고 하얀 건물들 덕분에 골목은 비교적 시원하다. 이 동네 사람들은 죄다 해수욕을 즐기러 나갔는지 골목안은 조용하기만 하다.
게이 퍼레이드 현수막이 보인다.
그들의 상징 무지개 깃발
음. 이런 의상을 파는 곳도 보이고...
(조금 많이 과장되었지만) 누드비치, 국제영화제 그리고 또 하나 시체스의 유명한 것이 있다면 바로 게이. 이 동네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게이 페스티발이 열리는 곳이다. 그래서 보수적인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못할 일들이 여기에서는 벌어지고 있다. 그들의 단장을 위한 아이템을 판매하는 샵이 있고, 곳곳에 무지개 깃발이 걸린 호텔, 호스텔, 음식점, 상점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사회의 시선이 어떻든 이 도시에 살아가는 게이들은 분명하게 자신들의 존재에 대해 알리고 있고, 사람들은 그들을 인정한다. 멋지다, 이 쿨함이...!!!
아담한 시체스 역
다시 바르셀로나로 돌아가는 기차를 타러 역으로 향한다. 지금까지 무지개 깃발이 꽂힌 곳을 지나와서 그런지 이 도시에 유독 훈훈하게 생긴 남성들이 많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슬프도다, 훈남을 차지하기 위해서 이제 남성들과도 경쟁해야 한단 말인가!!! OTL
시체스는 걸어서 반나절이면 돌아볼 수 있는 작은 도시지만 몇일 머물러도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너무나도 멋진 바다와 근사한 훈남들이 가득하니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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