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가 입구
부탄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우리는 새벽부터 차에 몸을 실었다. 항상 차분하게 운전하던 청년도 오늘만큼은 속도를 낸다. 오늘의 유일한 일정이자 우리의 마지막 일정은 부탄 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탁상사원을 방문하는 것이기 때문에. 절벽위에 있는 사원이라 산을 오르내리는 것으로도 시간이 꽤 소요되기 때문에 서두를 수 밖에 없었다. 원래 일정은 어제였는데 내가 앓아눕는 바람에 일정이 조금 꼬였다. 여행사는 예상치 못한 사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원하던 곳을 다 돌아볼 수 있게 일정을 다듬어 주었다.
난 말타고 오르기로 결심!
탁상사원이 자리하고 있는 산을 오르내리는 것만으로도 왕복 4~5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산 밑에는 산을 오르는 사람들을 겨냥한 나무 지팡이 판매가 한창이다. 운동화끈을 질끈 묶고 있는 내게 가이드 아저씨는 말을 타고 오를 것을 권했다. 아무래도 올라가는 시간도 있는데다 이 산의 경사가 은근 있는 편이라서 몇 일전까지 아팠던 내게는 무리일 수도 있단다. 그래서 나는 말을 타고 오르기로 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나의 결정이 아저씨의 조언이 너무나도 현명했음을 깨달았다. 이 산 경사가 장난이 아니구나!!!
한참을 올라서
저 멀리 사원이 보인다!
킁킁거리며 말이 산을 오른다. 경사도 험하고 길 상태도 좋지 않은지라 (곳곳에 바위!) 처음에는 조금 무서웠는데 이내 익숙해졌다. 잠깐의 두려움을 이겨내면 그림같이 아름다운 숲을 내려다 볼 수 있다. 하늘을 가릴만큼 높이 솟은 나무들이 뿜어내는 아침의 기운이 좋다. 그렇게 1시간 30분 정도를 올라가자 드디어 저 멀리 절벽에 아슬아슬하게 붙어있는 사원이 눈에 들어온다. 한참을 올라온 것 같은데 아직도 멀리서 바라보는 정도라니 앞으로도 갈 길이 멀다. 조금 더 힘을 내서 산을 오른다.
계속 올라가는 중
중간지점을 지나고부터 길은 점점 좁아지고, 경사는 점점 높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맙게도 나를 태운 말은 한발한발 처음과 같은 속도로 산을 오르고, 청년은 묵묵히 말을 끌고 걷는다. 그 뒤로 땀을 비오듯 흘리는 신랑이 있었다는..!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오다보니) 나는 말을 타고 오르는 것도 쉽지 않은데, 청년은 땀도 흘리지 않고 숨도 고르지 않는다. 심지어 그의 신발은 다 떨어진 삼선슬리퍼인데 말이지. 도대체 몇 번이나 이 산을 오르내린걸까 물어보니 기억도 나지 않는단다. 산을 오르다보면 어느새 정상에 도착해 있다고 길을 보지 말고 주변을 둘러보면 금방이란다. 산을 오르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는 것과 같다. 자꾸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는 것보다 앞을 보고 남아있는 길을 생각하는 것이 몸과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
나를 태워준 고마운 녀석
이제 걷는다.
중간지점에서부터 한 시간을 더 올라가서야 말이 걸음을 멈췄다. 여기서부터는 걸어서만 갈 수 있단다. 말에서 내려 조심스레 발걸음을 옮긴다. 아무것도 없던 예전에 비해 계단도 생기고, 난간도 생기고 지금은 길이 좋아져서 사원에 가기 쉬워졌단다. 차분하게 사원에 대한 설명을 이어가는 가이드 아저씨 역시 땀을 별로 흘리지 않는다. 목소리 톤도 산 아래서나 위에서나 비슷하다. 이 나라 사람들은 죄다 전문 산악인인건가?
말이 필요없다! 멋지다구!
드디어 절벽에 지어진 사원이 손에 닿을듯 가깝게 보인다. 사원을 둘러싼 뿌연 아침안개가 사원을 더 신비로워 보이게 한다. 마치 하늘에 떠 있는 것처럼...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 시작하자 거짓말처럼 안개가 걷히고 사원의 모습이 또렷해진다. 뭔가에 홀린 듯 발걸음을 재촉한다.
사원이 점점 가까워진다.
사원으로 걸어가는 것은 생각만큼 만만치 않았다. 가이드 아저씨 말처럼 난간도 있고 계단도 있었지만 경사도 급하고 미끄러웠기 때문에.
그래도 한걸음 한걸음 내딛을 때마다 믿기지 않을만큼 근사한 사원이 가까이 다가오자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사원으로 다가가는 중
얼마나 걸었다고 땀이 송송 솟는다. 역시 난 운동부족이 맞나보다. 사원 바로 앞에 있는 거대한 폭포에서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잠깐동안 뜨거워진 몸을 식혀준다. 그렇게 우리는 사원에 도착했다. 중요한 의미가 있는 곳이다보니 카메라, 담배와 같은 소지품은 입구에 맡겨야 입장이 가능하다. 그 동안 부탄에서 본 사원들은 소박하지만 깔끔하게 정돈되어 아늑하고 평화로운 느낌이었는데 이 사원은 뭔가 분위기가 다르다. 신비롭고 몽환적인 것이 티벳에서 본 사원들과 더 비슷하다. 사원을 돌아보고 마음을 다해 기도해본다. 우리의 여행이 안전하고 건강하길. 법당을 나오며 물어보니 감사하게도 가이드 아저씨도 같은 기도를 했단다.
이제 하산할 시간
이제 다시 아래로 내려갈 시간이다. 내려가는 것은 두 발로 걸어서 가야 한다. 마음을 단단히 먹고 산 아래를 향해 출발한다. 아쉬운 마음에 쉽게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사원앞에서 보이는 모습!
사원이 멀어진다.
빠르게 내려오는 빛나씨.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은 걱정했던 것보다 수월했다. 가던 길에 말떼를 만나서 일단 정지해야 했던 것을 제외한다면. 슬슬 아침 안개가 걷히고 햇빛이 내리쬐기 시작했다. 이제서야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벌써부터 땀을 비오듯 흘리고 있다. 아직 갈 길이 멀다구요!
무사히 돌아온 기념샷!
말을 타고 오를 때는 몰랐던 땅의 기운이 느껴지고, 간만에 운동은 몸에 남아있는 아픈 기운을 몰아낸다. 몸이 건강해지는 기분이 좋아서 발걸음을 재촉했다. 내려오는데 걸린 시간은 1시간 20분 정도? 가이드 아저씨 말로는 우리가 완전 빨리 내려왔다고. 내려온 길을 돌아보니 저 멀리, 저 높이에 하얀 탁상사원이 아주 작게 보인다. 등산과는 담을 쌓은 내가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내려왔다니 놀라울 뿐이다. (뭐 말의 도움을 좀 받긴 했지만..)
울창한 산림과 그 속에 지어진 사원, 여기는 부탄이 자랑하는 아름다운 자연과 그들의 강한 믿음(종교)을 한번에 보고 느끼기에 충분한 곳이었다. 부탄에서의 마지막 날, 여행 시작부터 앓았던 열병을 모두 털어버렸다. 앞으로 안전하고 건강한 날만 계속되길..
- 파로 시내 외곽에 위치하고 있고, 파로 국제공항과 자동차로 20~30분 거리다.
- 산을 오르고 내려오는데 (왕복) 4~5시간. 사원을 돌아보는데 1시간 정도를 생각하면 충분하다.
- 말은 올라가는 길에만 이용할 수 있는데 800루피(16,000원) 정도. 달리지 못하고 걸어가기 때문에 사람이 걷는 속도와 비슷하다.
- 평지가 거의 없는 오르막이므로 운동화는 필수다! 그 외에 물과 초콜릿 정도 챙겨보자.
- 사원안에는 카메라, 담배, 라이터 등 반입할 수 없는 물건이 많고, 입구 락커에 보관할 수 있다. 짐을 가볍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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