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게 공이라고?
인도여행의 마지막 도시 마말라푸람에 무사히 도착, 뜨거운 해가 들어갈쯤에 천천히 동네 구경을 나섰다. 가장 처음으로 만난 것은 크리슈나의 버터볼 (Krishna's Butter Ball).
다들 이렇게 사진 찍더라?
이 독특한 이름의 주인공은 돌로 된 언덕 한 가운데 덩그러니 놓여있는 커다란 바위덩어리였다. 모양도 공처럼 동그란데다 조금만 힘을 주어도 언덕 아래로 굴러 내려갈 것 같은 아슬아슬한 위치에 놓여있어 많은 사람들의 설정샷 포인트로 인기가 좋은 편이었다. 신기하긴 하지만 비슷한 아니 더 아슬아슬하게 놓인 돌 덩어리들을 함피에서 수 없이 보았기에 그리 감흥이 크진 않았다. 다만, 왜 수 많은 인도의 신 중에 '크리슈나'의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궁금할 뿐.
돌 산을 깎아 만든 사원들
일몰은 꽤 근사하네
일몰 보겠다고 꼭대기까지 올라왔다.
길을 따라 걷다보면 안쪽으로 벽을 깎아서 만들어진 사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잔타의 영향을 받아서 만들기 시작했다는데... 역시 원작만한 후속은 없나보다. 입장료를 받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정해진 루트가 있는 것도 아니다보니 산책하는 기분으로 돌산에 새겨진 사원들을 둘러보았다. 산 너머로 해가 지는 모습은 꽤 근사했다. 인도에서 일몰을 보는 것이 얼마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더욱 특별해 보이기도 하고.
꽤 정교한 부조
고행을 하고 있어 비쩍 말랐다고
이 코끼리가 실제 크기란다.
산책길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아르주나의 고행(Arjuna's Penance)'이라 불리는 거대한 암석 부조였다. '갠지스강의 하강(Descent Of The Ganges)'이라고도 불리우는 이 작품은 천상에 있던 갠지스강이 시바의 명령에 따라 하강하는 장면을 그렸다고 한다. 그 과정에서 신과 인간 사이에서 태어난 아르주나라는 인물의 고행을 묘사하고 있다고. 이들의 신화는 천상에 있던 강이 지금의 갠지스강이 되었다고 말하고 있으니, 힌두교에서는 갠지스를 성스럽게 여기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무엇보다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작품에 담겨진 신화의 내용보다는 작품 그 자체였다. 실물 크기로 조각된 코끼리를 비롯한 등장 인물과 동물들이 모두 살아 움직이는 것 같았으니까.
인도 사원 방문하기
돌아가는 길, 이름모를 작은 사원에 들렀다. 두 달이 넘게 인도를 여행하면서 들렸던 사원이 몇 개인지 셀 수 없을 지경이지만, 지붕끝까지 섬세한 조각들로 가득한 인도스타일 사원을 곧 볼 수 없다고 생각하자 자연스레 발걸음이 옮겨졌다.
현지 사람들을 따라 동그란 초에 불을 붙였다. 우리는 종교도 없고, 코끼리신도 믿지는 않지만 종교라는 것은 결국 모든 사람들의 소망과 기도로 유지되는 것이니까. 여행하면서 방문한 수 많은 사원의 수 많은 신들이 한 번씩만 우리의 기도를 들어준다면 우리의 여행도, 인생도 무사히 돌아가지 않을까.
순식간에 어두워진 시내
마말라푸람의 밤은 해가 지기가 무섭게 찾아온다. 그도 그럴것이 이 동네는 전기가 풍부하지 않아 두 시간 간격으로 정전이 되기 때문이다. 두 시간 정전, 두 시간 전기 공급 그리고 다시 두 시간 정전이 매일 밤마다 반복된다. 자가발전기를 보유한 몇몇 식당과 고급 호텔들은 정전시간에도 불을 밝히지만 우리가 머무는 숙소와 그 주변은 순식간에 어둠에 휩싸인다.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이 동네 사람들에게는 평범한 일상인거다.
24시간 끊기지 않고 공급되는 전기, 따뜻한 물, 초스피드 인터넷... 그 동안 너무나도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들도 내가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가지고 있었던 것임을 새삼 깨닫는다. 하던 일을 멈추고 조용히 손전등을 꺼내들었다. 여행을 시작하고 우리는 숙소에서 내어주는 깨끗한 수건 하나에 감사하는 사람이 되었다. 고되고 힘든 날도 있지만 지금 이렇게 여행하고 있는 것도 분명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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