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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 열사 기념관, 돌아오지 못한 헤이그 특사 (Den Haag, Netherlands)

빛나_Bitna 2017. 2. 28. 07:55

네덜란드 어디? 암스테르담? 

혹시, 헤이그라고 들어봤어요? 

네, 헤이그 특사!


네덜란드 어디에 살고 있냐는 질문을 받을 때마다 종종 헤이그 Den Haag를 언급하곤 한다. 우리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도시이기에; 재밌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십중팔구 '헤이그 특사' 혹은 '이준 열사'를 외치는데, '헤이그 특사'의 '헤이그'가 네덜란드의 도시 이름이라는 사실에 놀라는 이도 적지 않더라. 이것이 바로 주입식 교육의 폐해;; 네덜란드 정부 기관들이 모여있는, 네덜란드 정치의 중심지 헤이그에서 '헤이그 특사'의 흔적을 찾아가본다. 


차이나 타운 입구


상점들이 몰려있는 골목길에서


이준 열사 기념관을 찾았다.


이준 열사 기념관 Yi Jun Peace Museum은 헤이그 센트럴 차이나타운 골목길 안에 있다. 입구에 태극기가 걸려있긴 하지만 규모도 작고 외관도 소박한 편이라 무심코 지나치는 경우도 많을 것 같았다. 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이 건물은 1907년 헤이그 특사가 머물었던 숙소로 네덜란드 교민이신 관장님 부부가 사재를 털어 기념관으로 만들었다고. 입구에 있는 벨을 누르면 박물관 안으로 입장할 수 있다. 


박물관 내부


당시의 시대적 상황과 헤이그 특사의 파견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러시아 블라디보스톡에서 네덜란드 헤이그까지 무려 2달의 시간이 걸렸다고


헤이그 특사들의 활동을 볼 수 있다.


관장님께서 하나하나 직접 소개해 주셨다.


기념관 내부에는 헤이그 특사가 파견될 당시의 시대적 배경과 헤이그 특사 세 사람의 이동과정 그리고 헤이그에서의 활동을 설명해주는 다양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대부분의 자료들은 액자나 판넬 등을 이용해 전시되어 있었는데 그 소박함 때문일까 왠지 100여년전 그 시대에서 멈춰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1905년 한반도를 본격적으로 침략하기 시작한 일본은 강제로 을사늑약을 체결해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한다. 이대로 나라를 빼앗길 수 없었던 고종은 을사늑약의 불법성을 폭로하고 대한제국의 주권 회복을 열강들에게 호소하기 위해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이준, 이상설, 이위종을 비밀특사로 파견하게 된다. 이들은 고종의 마지막 승부수였던 셈이다. 하지만 이들은 정식 초청장이 없다는 이유로 만국평화회의 참가를 거부당한다. (사실은 당시 국제적으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었던 일본의 사전작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 사람은 여기서 포기하지 않고 해외 언론들을 통해 일본의 침략과 을사늑약의 부당성, 대한제국의 현실을 적극적으로 호소한다. 


헤이그 특사 사건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27625&cid=46623&categoryId=46623




당시 헤이그 특사가 머물던 방


이준 열사의 비석


당시 이준 열사가 머물던 방에는 그의 사진과 옷가지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기념관 건물은 과거 헤이그 특사가 묵었던 숙소였다.) 그는 이 곳에서 조국의 현실을 전세계에 알리려고 노력하다 숨을 거뒀다. 낡고 좁은 방, 작은 희망을 품고 머나먼 낯선 땅까지 찾아왔지만 국제 사회의 냉정한 현실에 부딪혀야 했던 이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낯선 땅에서 조국의 슬픈 역사를 짊어진 젊은이들의 하루하루를 상상해보니 마음이 무거워졌다. 


우리가 잘 몰랐던 두 사람 - 이상설 이위종에 대한 자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이준 열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두 사람의 헤이그 특사 이상설, 이위종 선생에 대한 자료들이었다. 두 사람은 헤이그에서 겪은 실패와 이준 열사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평생을 독립운동에 힘썼다. 개인의 삶을 나라를 위해 바치다니, 이 곳을 방문하기 전까지 헤이그 특사가 몇 명인지도 제대로 몰랐던 나는 그 숭고한 뜻에 자꾸만 얼굴이 뜨거워졌다.    


박연과 하멜 그리고 히딩크 감독으로 이어지는 네덜란드와 한국에 대한 이야기


1907년에 사용되던 태극기


기념관 입구에 걸려있는 태극기를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평생을 나라를 위해 바쳤던 헤이그 특사 그리고 그들의 뜻을 잊지 않기 위해 사재를 털어 기념관을 꾸려가고 계신 관장님 부부, 나는 과연 내 나라를 위해 이런 일을 할 수 있을까? 이런 분들이 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을 수 있는 것인데 지금까지 너무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되는구나.  


기념관을 나서며 무엇보다 마음에 걸렸던 것은 이런 뜻깊은 공간이 국가가 아닌 개인의 힘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헤이그 시를 설득해 철거될 위기의 건물을 매입한 것도, 관련 자료들을 하나하나 수집해 박물관을 만든 것도 모두 네덜란드 교민이신 현 관장님 부부란다. 100년이 넘은 건물을 관리하는 것부터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이 박물관의 의미를 알리기 위한 작업까지 손이 필요한 곳이 한두개가 아닐텐데, 왠지 죄송스런 마음에 종종 방문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국가 차원에서의 경제적/인적 지원이 필요할텐데 나라님은 도대체 뭐하고 계신지... -_- (배우 송혜교씨가 후원했다는 기사를 보고 엄청 기뻤다.)    



여기가 비넨호프 Binnenhof


현재 국회의사당, 총리부, 외무부 등 네덜란드의 중앙 관청들이 모여있는 곳이다.


비넨호프의 메인 건물 중 하나인 리더잘 Ridderzaal


1907년 이곳에서 제2차 만국 평화회의가 열렸다.


이준 열사 기념관을 방문한 뒤, 산책삼아 비넨호프 Binnenhof 안을 거닐어 본다. 1907년 만국평화회의가 열렸던 건물인 리더잘 Ridderzaal은 현재 국회의사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100여년전 이 곳을 찾아온 헤이그 특사들은 굳게 닫힌 건물 앞에서 얼마나 원통했을까. 약소국을 침략하고 이를 묵인하는 강대국들의 말뿐인 '평화'회담에 얼마나 실망했을까. 


네덜란드라는 낯선 땅에서 우리 역사를 마주하니 기분이 묘했다. 사실 우리나라에 네덜란드 가이드북이 많지 않아서 (+그나마 있는게 일본거 번역서라서!!!) 우리나라 여행자들 중에도 헤이그에 이런 기념관이 있다는 것을 잘 모르는 이들이 많다. 때문에 개인적으로 앞으로도 종종 이 곳을 방문하리라 + 지인들에게 널리널리 알려보리라 다짐해본다. 사실 오늘 이 포스팅을 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는.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한국과 일본 그리고 아시아의 역사에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된다면 아직도 헛소리 하시는 아베 아저씨가 좀 조용해지지 않을까. -_-+   


헤이그 이준 열사 기념관 Yi Jun Peace Museum 

- 주소 : Wagenstraat 124a, The Hague, The Netherlands

- 관람시간 : 월~금 10:30 ~ 17:00 / 토 11:00~16:00 (일요일, 공휴일 휴관)

- 관람료 : 일반 5 EUR (기부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