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1년만입니다. 2020년 새해 인사를 끝으로 블로그가 멈춰버렸죠. 마음이 싱숭생숭해서일까요, 사실 그 동안 끊임없이 블로그를 들락날락 했는데 차마 글쓰기 버튼을 누를 수가 없더라구요. (덕분에 숨겨진 글이 한가득이예요. ㅋ) 모두가 참 힘들었던 2020년과 얼떨결에 훅 치고 들어온 2021년, 모두 건강하게 보내고 계시죠?
코로나, 누구도 상상도 못한 세상
이제 막 태어난 아이와 동시에 출간된 신간의 후속작업 그리고 한국행 준비로 정신없던 지난 1월에는 감히 상상조차 못했어요. 중국발 바이러스가 범상치 않단 뉴스에도 (집안에 큰 일이 겹쳐) 조심스레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2월에도 말이죠. 순식간에 유럽까지 퍼져나간 바이러스로 귀국행 비행기가 끊겨버린, 그래서 아무 준비없이 한국에 갇혀버린 3월이 되어서야 깨달았어요.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기 어려워졌다는 것을.
두 아이와 강제로 시작된 홈리스 Homeless 생활은 상상 그 이상으로 어려웠습니다. 당장 온가족이 입고 신을 옷과 신발, 각종 유아용품을 사들이는 것부터 보통 일이 아니었으니까요. 무엇보다 어려웠던 것은 바깥 활동이 제한된 상황에서 에너지 넘치는 만 4세와 집중케어가 필요한 3개월 아이를 돌보는 일이었어요. (심지어 '장비발'도 없는 '맨손육아') 그 와중에 남편은 출장 일정과 밤낮이 뒤바뀐 재택근무로 넉다운, 양가 어른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어땠을지... 상상조차 싫으네요. 겨울에서 봄 그리고 여름으로, 계절이 두 번 바뀌고서야 저희 가족은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무려 5개월만에, 이삿짐 수준의 짐들을 이고 지고서.
일상, 미처 깨닫지 못했던 당연한 것들
오가는 이의 설레임과 아쉬움 대신 불안한 긴장이 가득한 텅 빈 공항. 세계여행을 하면서, 해외살이를 하면서 수 없이 방문했던 공항이지만 2020년의 공항은 참 낯선 곳이더군요. 빈 옆 좌석에 절로 미소가 나오는 것이 보통의 비행이건만 (저희를 포함한) 몇 안되는 승객들은 마스크 위로 불안한 눈동자만 움직일 뿐이었죠.
5개월만에 돌아온 집은 그야말로 엉망이었어요.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아이들 방을 새로 세팅하고, 이고 지고 온 짐을 풀었는데... 배편으로 보냈던 짐이 또 도착했네?! ^^;;; 결국 여름이 끝날 무렵에나 어지러웠던 집안이 제 자리를 찾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네덜란드의 확진자수는 해가 바뀐 지금까지도 줄어들 기세가 보이지 않고, 살얼음판을 걷는 듯 불안한 일상이 이어지는 중입니다. 여행은 커녕 학교도 회사도 갈 수 없고 친구들과도 마음껏 어울릴 수 없는, 당연한 듯 누렸던 일상을 잃어버린채 1년째 살아가고 있네요.
일, 나의 일이 사라져 버린다면
지난 해, 잃어버린 일상만큼 저를 힘들게 하는 것은 나의 일이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불안함과 상실감이었어요. 많은 분들이 예상하시겠지만 여행작가인 제게 코로나는 너무나도 악독한 녀석이더라구요. 새해와 함께 출간된 신간은 코로나의 직격탄을 맞았고, (작년 새해 인사에 살짝 언급했던) 2020년 저의 '새로운 도전'은 감히 시작도 하지 못했으니까요.
이쯤에서 밝혀보는 저의 '새로운 도전'은... 여행을 사랑하는 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꿈꿨던 그 것, 여행자 숙소의 주인이 되는 것이었죠. 이 야심찬 계획을 위해 적당한 집을 물색하고 수리하고 관련된 행정처리 등등 1년 넘는 시간을 공들였지요.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지난 여름 저희 집을 찾아주시는 분들과 테라스 바베큐를 실컷 즐겼을텐데... 그 날이 곧 오겠죠? 저희 집에 찾아와 주실거죠?
소중한 시간, 온 가족이 끈끈해 지는 중
그래도 1년만에 포스팅인데 마냥 우울할 순 없죠. 코로나와 함께 한 1년, 얻은 것이 있다면 가족과 함께한 시간이었어요. 강제로 한국에 발이 묶이면서 (거의 10년만에) 부모님과 무려 5개월의 시간을 함께 할 수 있었죠. 사실 그 동안은 한국에 들어가면 친구들과 지인들을 만나느냐 바빴는데, 외부활동을 자제해야 하는 시기다보니 더더욱 가족들만 만나게 되더라구요.
그리웠던 엄마밥도 실컷 먹고, 오빠네 가족과 여행도 가고... 무엇보다 아이들과 어른들이 오랫동안 함께 할 수 있어 더 없이 소중했던 시간이었어요. 매일 할머니, 할아버지와 있었던 이야기를 꺼내놓는 아이를 보며 해외살이로 늘 죄스러웠던 마음을 조금이라도 덜어낼 수 있었지요.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도 빼놓을 수 없어요. 2020년은 재택근무와 휴교로 24시간 아이들과 붙어있어야 하는 육아전쟁의 나날이었거든요. 예상보다 몇 배는 힘든 것이 사실이지만 함께한 시간들이 쌓여갈수록 가족이 돈독해지는 느낌이랄까요. 지나고 나면 아이들과 함께한 이 시간들은 소중한 추억으로 남겠지요.
바이러스와 함께 한지 1년이 넘었건만 네덜란드와 유럽의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어요. 촘촘한 방역수칙이나 빠른 대응, 적극적인 시민들의 참여 따위;는 찾아볼 수 없기에 심적인 부담도 더해지는 중이구요. 덕분에(?) 2021년 새해는 슈퍼와 약국같은 필수 시설 외에 모두가 문을 닫은 하드 락다운으로 시작되어 온가족이 집콕신세랍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다시 힘을 내고 조금씩 꿈을 꾸고 있어요. 늘 '엄마 사랑해'를 입에 달고 사는 아이와 저의 모닝커피를 위해 육아대디를 자처한 남편, 외노자의 고충을 함께 나누는 따뜻한 이웃들 그리고 세계 구석구석에서 각자의 시간을 살고 있는 친구들에게 많은 위로와 응원을 받고 있거든요.
서로서로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시기이지만 인류애(?)가 충만해지는 요즘입니다. 덕분에 아이들이 잠든 밤 시간을 활용해 밀린 사진 정리와 독서, 글을 쓰고 있어요. 우리 다시 떠날 날을 그리며 즐겁고 건강한 하루하루를 보내자구요. 저도 방치됐던 블로그와 인스타(@bitna_1105), 몇 년째 열지 못한 브런치 등 다양한 채널로 돌아올게요. :) 새해에는 모두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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