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탑승하는 기차
Sleeper Class
카주라호에서 아그라로 이동하는 날, 아침기차라 빈둥거릴 틈이 없다. 두 도시 이동에 걸리는 시간은 8시간, 인도 기차여행치고는 짧은? 거리지만 기차에서 하루를 보내야 하니 이 것도 만만치 않겠구나. 간식거리와 읽을거리 등 시간 보내기 좋은 것들을 챙겨들고 기차 탑승!
텅 빈 코치
우리 자리는 여기
단 두 번의 인도기차 경험으로 파악하게 된 명당자리에 짐을 풀고 코치 안을 둘러보았다. 항상 현지 사람들로 가득한 Sleeper Class인데, 오늘은 코치 안이 텅 비어 있다. 카주라호가 워낙 작은 마을이라 탑승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겠지. 내 세상인양 빈자리를 차지하고 앉는 것까진 좋은데, 아그라까지 가는 동안 언제 어느 역에서 갑자기 사람들이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긴장감 또한 감출수가 없구나.
인도 여행의 시작, 인도에서 기차타기 http://bitna.net/1189
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
기차가 달린다.
짜이와 커피는 기차 필수 간식
느릿느릿 기차가 출발한다. 지저분한 기차역을 빠져나가니 호수도 나오고, 들판도 나온다. 짜이 한 잔을 손에 들고 한참동안 창 밖 풍경을 감상하다 시간을 확인했다. 그.런.데... 어머, 뭐니 이건! 지금 한 시간도 안 지났잖아! 이렇게 달려서 오늘 내에 아그라까지 갈 수 있는거 맞아?
방금 전까지 차 한잔 손에 들고 여유로운 척 연기하던 나는 어디로 가고, 지루함에 몸서리치는 내가 나타났다. 여행을 시작하고 느림과 여유를 즐기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항상 빠르고 바쁘게 살아오던 내가 이런 변화를 받아들이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함을 잊고 있었나보다.
론리플래닛 인도편 드디어 정독
중간중간 역에 멈춘다
저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다시 열차는 달린다
가방 한 구석에 있던 론리플래닛을 꺼내들었다. 지도나 숙소, 식당 정보 외에는 읽어보지 않았던 인도의 역사, 문화, 종교에 대한 설명들을 술술 읽어 내려갔다.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을 발견했기 때문일까, 여행하면서 생긴 호기심 때문일까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렇게 책을 읽고, 창 밖으로 구경하다가, 기차가 멈췄을때 간식도 사고, 열차 안에서 짜이파는 아저씨도 찾아다니기를 반복하면서 열차에서의 하루를 보냈다. 인터넷도 휴대폰도 없는 하루,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여행을 이어가면서 차차 익숙해지겠지. 하루를 보내는 방법도 점점 다양해지겠지.
아그라 칸트 역
여기는 릭샤 주차장
이 것이 외국인용 공식 가격표
어두워질 시간에 도착한 아그라역. 시끄러운 클락션 소리에 정신없이 몰려드는 릭샤기사들을 보니 이 곳은 다시 도시로구나. 기차 안에서 열심히 론리플래닛도 보고, 아그라에서의 일정도 정리했기 때문에 역 밖으로 나오자마자 타지마할 쪽으로 가는 릭샤를 찾았다. 역 앞에 가격표가 떡 하니 붙어있음에도 불구하고 말도 안되는 가격을 부르는 릭샤 기사들은 도대체 무슨 심보인지 이해할 수가 없다. (사실 저 가격표도 많이 비싼 가격이라고!)
아그라 시내로 이동 중
흰머리가 히끗히끗한 릭샤기사는 처음엔 다른 기사들을 흉보면서 정직한 척 하더니만 끊임없이 투어를 권하고 자기가 아는 숙소에 데려다 준다며 우릴 귀찮게군다. 이런 경우가 한 두번도 아니고 그냥 무시하고 내리자니 돈을 더 내란다. 버럭 화를 낼 만도 한데 그럴 가치도 없다고 판단, 그냥 무시하고 뒤돌아섰다. 귀찮게 따라오던 기사는 제 풀에 지쳐 물러난다. 여행객의 주머니를 노리고 따라붙는 이들과의 전쟁, 그 속에서 스스로의 한계를 다스리는 법을 배우는 곳이 바로 인도다.
식당에서 본 타지마할
오늘의 귀한 선물
긴 흥정끝에 타지마할 남문 근처에 있는 숙소에 짐을 풀었다. 그리고 여기서 처음으로 한국 여행자를 만났다. 추석 연휴를 포함해 열흘정도 혼자 배낭여행을 오신 어르신이었는데, 시원한 맥주와 귀한 선물로 우리의 여행을 응원해 주셨다.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연세도 많으시고 (자녀분들이 모두 대학생이라고!), 누구나 아는 곳에서 일하고 계신 분이셨는데 혼자 이렇게 고생스런 여행을 하시는 것이 신기했다.한 때 패키지로 단체 여행도 다녀봤지만 혼자 힘으로 여행하는 것이 훨씬 재밌어서 지금은 시간이 허락될 때마다 홀로 혹은 아내와 여행을 즐기신단다. 처음에는 조금 힘들었지만 몇 번 다녀보시니 나름 요령도 생기고 배우는 것도 많아서 자녀분들에게도 권하게 되었고, 가족들과 여행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신다고.
나중에 우리가 나이가 들면 이런 모습이 될 수 있을까? 여행길에서 만난 인생의 후배님들에게 시원한 맥주 한잔과 응원의 메세지를 보내줄 수 있을까? 항상 새로운 것은 받아들이고 스스로를 발전시켜가면서도 나의, 우리의 삶의 방식을 유지하며 살아가는 것. 오늘 세상사는 방법을 여러가지 배우는구나.
아그라 숙소, 사니야 팔레스 Saniya Palace http://bitna.net/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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