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라를 찾는 많은 여행자들이 그러하듯이 우리도 1박 2일정도로 짧게 머물다 가려고 했는데 문제가 생겼다. 타지마할이 금요일, 바로 오늘 문을 닫는다는 것. 두둥! 누군가는 타지마할의 외관을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니 인도에서 가장 비싼 입장료를 내고 들어갈 필요가 없다고 말하기도 하지만... 나는 그렇게 타지마할을 지나치고 싶지 않았기에 우리 일정을 2박 3일로 변경했다. 덕분에 아그라에서도 여유롭게 다닐 수 있겠구나.
아그라 요새 입구
입장!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아그라 요새 (Agra Fort). 뜨거운 태양덕분에 붉은 외벽이 불타는 듯 강렬해 보였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높이 솟은 외벽의 견고함은 먼 옛날 무굴제국의 전성기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 같았다.
1565년 무굴제국 3대 황제인 악바르(Akbar) 대제에 의해 처음 만들어졌고, 후대의 왕들에 의해 지속적으로 증축되었는데 가장 큰 재능을 보인 사람은 샤 자한(Shah Jahan)이다. 타지마할로 유명한 그는 건축에 남다른 애정과 재능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의 시대에 아그라 요새 안에 화려한 건축물들이 대거 추가되었다고 한다.
높은 성벽도 근사하다.
한참을 걸어야 본격적인 요새 내부가 나온다.
게이트를 통과하고 난 뒤에도 몇 개의 문을 지나 한참을 걸어야 본격적인 건물들을 마주할 수 있다.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구조였으리라. 요새 안에는 황제를 비롯한 그의 가족들이 거주했던 성, 정원, 모스크, 분수대 등이 위치하고 있는데, 예상보다 넓고 볼거리도 많아서 한참동안 지도를 보고 동선을 연구해야 했다.
붉은 사암으로 된 건물들이 남성적이고 강인한 이미지라면 흰색으로 만들어진 건물들은 여성적이고 우아한 느낌이다. 겹겹이 늘어선 아치형 기둥들 사이를 걷노라면, '요새'가 주는 딱딱하고 투박한 이미지를 찾아볼 수 없다. 건축과 예술에 뛰어난 감각을 가지고 있었다던 무굴제국의 흔적이라고나 할까.
자무나(Jamuna)강을 마주하고 있는 성 안쪽에는 새하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건물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건 샤 자한의 솜씨가 분명하다. 화려한 문양으로 가득한 호화로운 건물들 어딘가에 'Built By Shah Jahan'이라고 씌인 꼬리표가 달려있는 것 같았다.
샤 자한이 생을 마감한 곳
저 멀리 타지마할이 보인다.
아름다운 타지마할
아그라 요새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셔터 세례를 받는 건물은 아이러니하게도 강 건너 보이는 타지마할이다. 여기서는 타지마할이 강물에 떠 있는 신기루처럼 보인다.
타지마할이 가장 잘 볼 수 있는 지점에는 '포로의 탑'이란 뜻의 무삼만 버즈(Musamman Burj)가 있다. 이 곳은 아들에 의해 왕위를 빼앗긴 샤 자한이 유폐되어 생활하다 생을 마감한 장소이다. 무굴제국의 전성기를 가져왔던 왕의 말년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성 안에서 먼저 생을 떠난 아내의 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고.
개인정원에 테라스까지 갖춘 화려한 대리석 건물은 감옥이라 부르기에 너무 호화로운 것이 사실이지만, 손에 닿을 듯 가까우면서도 직접 찾아갈 수 없는 타지마할을 바라보는 것 자체가 샤 자한에게는 너무 큰 고통이었으리라.
뜨거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두 시간 동안 요새안을 열심히 돌아다녔다. 누구의 침입도 허용하지 않을 것 같은 견고한 성벽안에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무굴제국의 건축물들과 가슴시린 샤 자한의 이야기가 감춰져 있었다.
한 나라의 왕으로써 아내를 잃은 슬픔에 무려 22년 동안 나라를 뒤로 한 것으로도 모자라, 아내의 묘를 만드는 것에 평생을 매달렸다는 것이 한심하게 생각될 수도 있겠지만...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이 시간이 지난다고 줄어들 수 없음을 알기에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 동안 메말랐던 감성이, 굳어진 마음이 여행을 하면서 조금 말랑말랑해지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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