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이라... 슬로베니아 여행을 처음 계획할 때 와이너리 방문은 우리의 'Must Do' 목록에 들어있지 않았다. 1) 일단 슬로베니아 와인은 우리에게 좀 생소했고, 2) 꽤나 긴 일정에도 불구하고 이것저것 하고픈 것이 많은데다 3) 아기를 동반하고 있었기에 방문 자체가 쉽지 않을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블레드 성 레스토랑에서 여러가지 슬로베니아 로컬 와인을 맛보고 난 뒤, 일정 사이에 와이너리 방문계획을 낑겨넣어야 했다. 특유의 맛과 향 그리고 슬로베니아 밖에서는 좀처럼 접하기 어렵다는 희소성까지 갖춘 와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블레드, 천년 고성에서 즐기는 근사한 한끼 (Bled, Slovenia) https://bitna.net/1733
슬로베니아 와이너리, 어디로 갈까?
슬로베니아의 와인 생산지는 크게 세 곳으로 나뉜다. 가장 많은 생산량을 자랑하는 북동부 1) 포드라브예 Podravje (Podravska)는 화이트 와인을 주로 생산하며 스파클링 와인 같은 디저트 와인으로도 유명하다. 대표적인 도시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나무가 있는 마리보르 Maribor로 여행 끄트머리에 방문하기로. (급히 일정에 낑겨넣음ㅋ) 이태리 국경과 인접한 2) 프리모슈카 Primorska 지역은 화이트 와인이 주를 이루나 일부 카르스트 지대에서 '테란 Teran'이란 이름의 짙고 드라이한 레드와인도 생산한다. 남동부의 3) 포사브예 Posavje (Posavska)는 레드와인으로 유명한 지역이다.
와이너리 방문은 어떻게 할까?
슬로베니아 전역에는 3만개 이상의 와이너리가 있고, 52종 이상의 포도를 재배한다. 하지만 우리가 슬로베니아 와인을 접하기 어려운 이유는 대부분의 와이너리가 소규모의 부띠끄 와이너리이기 때문이다. 생산량이 적고 대부분이 자국에서 소비되니 수출되는 양은 적을 수 밖에.
와이너리 방문은 개인/그룹(여행사 투어) 모두 가능하다. 시간과 요금이 정해진 투어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와이너리도 있지만, 가족단위의 소규모 와이너리가 대부분인지라 와이너리 운영 시간내에 자유롭게 방문이 가능하다. 와이너리에 가족의 거주지가 붙어있는 경우가 많다보니 방문가능 시간도 꽤나 유동적이다. 원하는 지역에 방문하고자 하는 와이너리를 선택해 직접 연락(전화나 이메일)해보자. 레스토랑이나 여행자 숙소를 함께 운영하는 와이너리도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비파바 밸리, 틸리아 Tilia Estate 와이너리 방문기
비파바 밸리는 슬로베니아 서쪽 카르스트 지대의 나노스 산 Mt. Nanos이 굽어보고 있는 계곡이다. 온화한 기후에 이탈리아 투스카니를 연상케하는 테라코타 지붕과 고딕풍 교회들이 모여있는 평화로운 동네다. 계곡을 따라 작은 마을들이 흩어져 있고 170개가 넘는 와이너리가 자리하고 있다하니 와이너리 투어에 이보다 더 좋을 수는 없겠구나.
소차 밸리, 시원한 강물따라 흘러가기 (Soča Valley, Slovenia) https://bitna.net/1741
비파바 밸리에서도 우리가 선택한 와이너리는 틸리아 Tilia. 슬로베니아는 피노누아 품종으로 생산된 와인이 훌륭하다는 말을 주워듣고 요 품종을 좀 키운다는 몇몇 와이너리에 전화를 했는데, 아주아주 훌륭한 영어로 이어지는 친절한 안내와 유동적인 방문시간이 마음에 들었다. 1994년에 문을 연 틸리아 와이너리는 피노누아, 피노그리 등 '피노 Pinot' 품종으로 생산된 와인으로 유명하다.
틸리아 와이너리 Tilia Estate, Vipava Valley, Slovenia http://tiliaestate.si
예상보다 늦은 시간 도착한 우리를 맞아준 것은 와이너리의 오너인 마티야스(Matjaž Lemut)씨. 가족단위로 운영되는 소규모 와이너리라도 지나가는 여행자를 오너가 직접 맞아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에 깜짝! 놀랐다. 방금까지 생산 라인을 점검하고 있었다는 그는 편한 차림으로 성큼성큼 우리를 와이너리 내부로 안내해 주었다.
마티야스 씨는 틸리아 와이너리가 탄생하게 된 배경부터 와이너리의 상징인 린덴 나무에 얽힌 사연 등등 와이너리의 역사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대학 졸업 후 스위스와 캘리포니아 등지에서 다양한 경험을 쌓은 뒤 고향인 이 곳에 와이너리를 시작하게 되었다고. 공동대표인 아내는 현재 대학에서 관련 학문을 가르치고 있다고 한다.
와이너리 내부를 모두 둘러본 후 본격적인 테이스팅 시간.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틸리아에 우리같은 관광객을 위한 테이스팅 프로그램은 존재하지 않는단다. 고로 투어비용은 따로 없다는 뜻. 좋은거지? ㅋㅋ 와이너리를 대표하는 와인에 본인이 개인적으로 좋아한다는 와인까지 하나 둘 꺼내놓는 그의 손길이 범상치 않다 싶었는데, 인심좋게 콸콸 따라놓는 것도 모자라 리필도 가능하단 말을 덧붙인다. 이 아저씨, 참 쿨하시네~!
피노누아, 피노그리, 샤도네이, 멜롯 등 다양한 품종의 포도로 와인을 생산하지만 틸리아의 주력 상품은 역시 피노. 오렌지색 라벨의 화이트 와인과 검은 라벨의 레드와인으로 크게 나뉘는데, 개인적으로는 신선한 과일향의 오렌지 라벨이 입맛에 착착 붙었드랬다.
마티야스씨는 각국에서 온 와인 바이어들을 상대하는 일이 대부분이라 우리같은 여행자(심지어 흔치않은 아기를 동반한 동양인!)를 만나는 것이 너무 즐겁다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와알못'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쉽게 설명을 이어가는 그의 목소리에 와인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이 묻어났다. 슬로베니아란 나라에 대한 이야기, 우리 부부의 여행이야기, 조만간 네덜란드로 유학을 간다는 아저씨 아들에 대한 이야기 등등... 오고 가는 술잔 속에 빈 병이 속출하며 와인 테이스팅은 와인 파티로 흘러갔고, 파티는 우리가 예약한 숙소 체크인 마감 시간에 임박해서야 종료되었다. 숙소를 예약하지 않았더라면 방 한 칸 내어줄 기세였다. ㅋㅋㅋ
함께 포도밭을 거닐고 마음에 들었던 와인 몇 병을 구입하곤 와이너리를 나섰다. 아저씨는 길이 어두워졌다며 우리 숙소로 가는 길까지 꼼꼼하게 챙겨주며 우리를 배웅했다. 대단한 물량을 구매하는 큰 손 바이어도, 대단한 와인전문가도 아닌 '와알못' 여행자지만 환대받는 그 느낌 때문에 더욱 만족스러웠던 와이너리 투어. 이번 슬로베니아 여행 중 가장 이외의 발견이 될 것 같다.
틸리아 와이너리 Tilia Winery
- 주소: Potoče 41, 5263 Dobravlje, Slovenia
- 전화: +386 (0)5 364 66 84
- 홈페이지 http://tiliaestate.si
- 방문하기: 월~토 와이너리 개장시간에는 언제든지 가능. 5시 이후에도 가능한 경우가 많으니 방문 전 전화/메일로 확인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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