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 슬로베니아 대표 해안도시
스타니엘을 떠난 우리는 계속해서 남쪽을 향해 달렸다. 슬로베니아가 자랑하는 카르스트 동굴(이건 후에 포스팅 예정)들을 지나자 이정표마다 이탈리아 지명들이 끊임없이 등장했다. 슬로베니아-이탈리아 국경이 꽤나 가까워진 모양이다. 이대로 이탈리아까지 건너가 보고 싶지만 일정상 이번에는 슬로베니아에만 집중하는 걸로.
스타니엘, 언덕 위에 우뚝 솟은 성벽도시 (Štanjel, Slovenia) bitna.net/1746
슬로베니아 서부의 이스트라 반도는 아름답기로 소문난 아드리아해로 이어진다. 이스트라 반도는 고대 로마, 베네치아, 오스트리아-헝가리 공국, 이탈리아로 이어지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데, 현재는 이탈리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령으로 편입되어 있다. 아드리아해와 맞닿은 슬로베니아의 해안선은 겨우 47km에 불과한데, 우리의 목적지인 피란은 그 중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꼽힌다.
(거주자가 아닌) 외부 차량은 사람과 짐의 승하차를 위해 최대 15분간 피란 구시가지에 머물 수 있고, 주차는 구시가지 입구에 있는 공영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구시가지가 워낙 작아서 15분이면 충분해 보이지만 메인도로 외에는 옛날 스타일 그대로 좁은 골목길이 얽혀있는 형태다보니 초행에 헤메기 쉽상이더라. 마을 초입, 메인 도로에서 많이 떨어지지 않은 곳에 숙소를 잡은 것이 얼마나 다행이었는지... 역시 자동차로 유럽을 여행할 때는 '숙소찾기+주차'가 난제로구나.
외부차량 진입이 금지되어 있는 피란 구시가지
허가증이 없는 외부차량은 최대 15분까지 구시가지에 머물 수 있으며 주차시 마을 입구의 공영주차장을 이용해야 한다. 공영주차장과 구시가지 사이는 수시로 무료 셔틀버스가 운행된다. 물론 도보도 가능하다.
'외부차량 진입금지'라는 낯선 시스템에 누군가는 불평할 수 있겠지만 덕분에 피란 구시가지는 성수기에도 여유로운 바이브를 잃지 않고 있었다. 누구라도 언제든지 유유자적 쉬어갈 수 있을 듯한 느낌이 충만하달까. 숙소 근방에 빠르게 짐을 내렸다. 약속이라도 한 듯 나는 아이와 짐을 챙겨 숙소로, 남편은 주차를 위해 구시가지를 빠져나갔다. 이젠 제법 빠르게 분업화하는 우리, 아이와 여행하면서 부부의 팀웍?이 점점 더 탄탄해지고 있었다.
골목길 탐험, 구석구석에 남아있는 베네치아의 흔적
주차와 체크인을 완료하니 절로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그새 창가로 다가선 아이를 따라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더니 구시가지의 골목길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따가운 볕을 가려주는 건물들 사이를 걷기로 했다. 빛바랜 건물마다 쨍한 색감의 창문들이 시선을 끈다. 창가에 서 있는 누군가와 인사를 나누고 설레는 마음으로 모퉁이를 돌았다. 골목 사이로 바다내음을 품은 바람이 불어오고 선선한 바람에 집집마다 내걸린 빨래가 춤을 춘다. 이국적이면서도 소박한 풍경 속을 우리는 참 열심히 걸었드랬다.
골목 끝에 다다르자 갑자기 쏟아진 밟은 빛에 눈을 가늘게 떠야했다. 골목은 피란 구시가지의 중심 타르니티에브 광장 Tartinijev Trg으로 이어졌다. 성 베드로 교회와 타르티니 하우스, 시립홀과 여행자 센터 그리고 피란 출신의 작곡가이자 바이올린리스트인 주세페 타르티니 Giuseppe Tartini (1692-1770)의 동상 등 피란의 역사를 보여주는 것들이 모여있었다.
카페 한 구석에 자리를 잡았다. 달콤한 젤라또 한 입으로 더위를 날려보낸다. 영어보다 이탈리아어에 능숙한 카페 주인 말을 듣고 보니, 광장을 내려다 보는 성 조지 대성당 종탑은 베니스의 산 마르코 종탑을 닮았다. 피란 곳곳에서 풍기는 이탈리아의 향기는 사연많은 역사 덕분이겠지.
피란성벽, 여기가 피란의 노을맛집
조금씩 해가 낮아지는 것을 보니 느긋했던 마음이 바빠졌다. 광장 안에 있던 모두가 같은 마음인지 계산을 하고 테이블을 떠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굳이 지도를 찾아보지 않아도 앞서가는 이들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는 소리다. 아! 아무리 가는 길이 바빠도 중간중간 뒤를 돌아보자. 돌담길 사이로 조금씩 보이는 구시가지 풍경이 꽤나 근사하니까.
타르니티에브 광장 남동쪽에 있는 피란 성벽은 15~16세기 도시를 방어하기 위해 세워졌다. 합스부르크 왕가가 지배하던 시절에 대부분이 파괴되고 지금은 200m 정도 성벽의 일부만 남아있다고.
성벽에 오른 사람들은 저마다의 핫스팟을 찾아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다녔다. 멀리서는 조금 위태로워 보였지만 성벽 위로 오르는 계단이나 성벽을 따라 설치된 안전가드는 꽤나 믿음직스러웠다.
성벽 꼭대기에 오르자 외마디 탄성이 터져나왔다. 주황색 지붕을 얹은 구시가지의 집들과 넘실대는 아드리아해의 풍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졌으니까.
해수면 아래로 태양이 모습을 감출때까지 우리는 자리를 지켰다. 구시가지와 바다가 붉은 빛으로 또 다시 푸른 빛으로 변하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역시 노을은 봐도 봐도 질리지 않는다니까.
성벽에서 내려오자 주변은 이미 어두워졌다. 피란은 한껏 게을러지기 좋은 장소였다. 숙소를 나서면 빈티지 갬성 뽐내는 골목길이 시작되고, 뒤죽박죽 꼬인 듯한 길은 늘 바다로 이어졌다. 발길 가는대로 한참을 걸어도 길을 잃지 않는 곳을 돌아다니다보니 아이와 함께하는 여행의 부담으로 경직됐던 몸과 마음이 조금씩 말랑해졌다.
피란 (Piran, Slovenia)
- 슬로베니아 서쪽 끝, 아스트라 반도에 자리한 해안 휴양도시.
- 우리나라에는 고현정 배우님 주연의 <디어 마이 프렌즈 2016>의 배경으로 알려져 있다.
- 외부 차량의 구시가지 진입이 제한되어 있으니 렌트카 여행중이라면 꼭 미리 확인할 것.
- 곳곳에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공영비치가 곳곳에 있다. 보다 현대적인, 대형 리조트를 찾는다면 근처 포르토로즈 Portorož를 방문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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